오승준 남원시리틀야구단 감독이 WBC 체코야구대표팀 선수들과 동체 시력 향상 훈련을 하고 있다. /오승준 감독 제공
[OSEN=이상학 객원기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야구대표팀의 첫 상대였던 체코야구대표팀의 뒤에는 한국 야구인이 있었다. 18년째 유소년 야구를 지도하고 있는 오승준(44) 남원시리틀야구단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전주고 선수 출신인 오승준 감독은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K-베이스볼 시리즈를 마친 뒤 파벨 하딤 체코 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10년간 동체 시력 향상을 연구하며 자체 개발한 오 감독의 프로그램에 하딤 감독이 관심을 보였고, 지난 1월 체코 예세니키 산맥에서 진행된 타격 캠프에 그를 초청했다.
오 감독의 동체 시력 및 반응 속도 향상 프로그램은 VR 프로그램(릴리스 포인트를 찾고 초점을 맞춰 추적하는 훈련), 반응 프로그램(생각할 시간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반응할 수 있게 만든 훈련), 버릿 셔틀 트레이닝(셔틀콕으로 최대 180km 속도로 연습하는 훈련)으로 구성됐다.
체코 선수들의 반응이 좋아 오 감독은 일본 미야자키로 이어진 체코 대표팀의 2차 캠프 훈련까지 동행했다. 훈련 마지막 날 체코 대표팀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출신인 내야수 테린 바브라(28)가 “며칠 사이 실력이 향상된 것을 느낀다”며 오 감독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바브라는 지난해까지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3시즌 통산 68경기 타율 2할5푼2리(139타수 35안타) 1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오 감독의 훈련 덕분이었을까. 지난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WBC C조 조별리그 한국전에서 바브라는 홈런을 터뜨렸다. 한국에 0-6으로 뒤진 5회 2사 1,2루에서 한국 투수 정우주의 5구째 시속 92.6마일(149km)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우중간 담장 밖으로 넘겼다. 시속 103.8마일(167km), 발사각 37도로 날아간 비거리 375피트(114.3m) 스리런 홈런.
[OSEN=도쿄(일본), 손용호 기자]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C조 한국과 체코의 경기가열렸다. 5회초 1사 1,2루에서 체코 테린 바브라가 스리런 홈런을 치고 환호하고 있다. 2026.03.05/[email protected]
이날 경기는 한국이 11-4 낙승을 거뒀지만 바브라의 스리런 홈런은 일방적인 흐름이던 경기에 잠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투수들이 무너지긴 했지만 체코 타자들은 한국 투수들을 상대로 안타 9개를 치며 동체 시력 훈련 효과를 충분히 봤다.
오 감독의 훈련법은 일본 언론에서도 이미 주목했다. 지난달 27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체코 대표팀의 미야자키 캠프 훈련 소식을 전하며 ‘색다른 훈련이 진행됐다. 선수들이 가상현실(VR) 고글을 착용하고 좌우로 움직이는 점의 출발 지점을 눈으로 찾는 훈련이다’며 한국 유소년 야구 감독을 맡으며 동체 시력 트레이닝을 겸하는 오 감독을 소개했다.
매체는 이어 ‘배드민턴 셔틀콕을 배트로 쳐내는 연습도 있었다. 오 감독이 여러 각도에서 던지는 최고 시속 약 170km 셔틀콜을 보며 스트라이크 판별의 정확도 높이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체코의 한 선수는 “빠른 공에 대한 릴리스 포인트를 체크하며 타이밍 잡는 법이 개선됐다”며 훈련 효과를 말했다. 체코의 한국전 9안타 중 6안타가 패스트볼 계열 공을 공략한 것이었다.
오승준 남원시리틀야구단 감독이 WBC 체코야구대표팀에서 VR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승준 감독 제공
오승준 남원시리틀야구단 감독이 WBC 체코야구대표팀 파벨 하딤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오승준 감독 제공
‘야구 변방국’ 체코는 3년 전 WBC에서 중국 상대로 본선 첫 승을 신고하며 감동 드라마를 썼다. 대부분 선수들이 생업이 따로 있는 ‘투잡러’이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웬만한 전업 선수 못지않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 훈련하며 실력을 키웠고, 유럽 예선을 뚫고 처음 나간 WBC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취점을 뽑아내며 모두를 놀라게 했다.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가 체코 대표팀 모자를 쓰고 리스펙트를 표할 정도로 인정받았다.
이후 체코는 아시아 야구와 꾸준히 교류하며 경험을 쌓았다. 2024년 일본, 대만과 맞붙었고, 지난해 11월 한국과 평가전을 가졌다.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한국인 유소년 지도자의 훈련 방법까지 배울 정도로 야구 열정을 이어갔다. 오 감독은 “체코 팀은 어려운 환경에서 최고의 효율을 높이고자 저를 찾았다”고 전했다.
비록 WBC 첫 경기에서 한국에 패한 체코이지만 타자들의 스윙은 날카로웠다. 남은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좋은 타격감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체코는 6일 호주, 7일 대만, 10일 일본전이 예정돼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