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 로마의 예술 작품에 감히 순위를 매길 순 없겠지만 남다른 '물량 압박'에 약간의 편애는 어쩔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유독 끌린 건, 작품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수겹의 감상 때문이었다.
꽉 채워진 가슴은 뭐라도 글로 옮겨볼까 하는 순간 백지가 됐고, 그때마다 성베드로 성당을 다시 찾아 '슬픔'의 무게를 가늠해봤다.
목을 뒤로 꺾고 사지를 처절하게 늘어뜨린 예수, 그를 조용하고 담담하게 내려다보는 성모 마리아. 이 둘의 대조가 뿜어내는 기운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을 만큼 압도적이다.
성모의 평온한 표정에 묻어난 희망의 기운과 뒤틀린 예수의 몸에 담긴 고통이 마치 빛과 어둠처럼 포개진다. 절절한 염원·갈망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죽은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를 그린 피에타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이미지다. 종교 혹은 예술적 이유로 누군가가 상상한 장면이라는 뜻이다.
예술의 상상력은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불쑥 현실에 비치면 당황스럽고 불편할 때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만 4년째 되던 날 외신 기사를 넘겨보다가 지금은 우크라이나군의 저격수가 된 전직 댄스 강사의 사진에 멈춰 섰다.
위장 군복을 입은 그녀는 소음기를 장착한 저격용 장총을 품에 안고 있다. 그녀 옆으로 입상에 감격한 댄스 수업 학생들과 함께 찍은 전쟁 전 사진이 보인다.
두 사진 속 여성의 포즈는 같았지만 학생들과 시상대는 사라졌고 화려한 경기장은 황량한 눈밭으로 변했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의 4년이었다.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는 가족과 지인들이 다치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두려움이 됐을 것이다. 난방이 끊긴 혹한의 밤이 반복되면서 전쟁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닌 현실이 됐다. 그녀는 그렇게 총을 들었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만난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다들 그렇게 새 '일상'에 적응 중이었다.
로봇공학자를 꿈꾸며 전쟁 중 석사 과정을 시작한 한 청년은 요즘 학교보다 방공호를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최전방 가장의 '생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흔한 가족의 일상이다.
그들이 다시 4년 전의 삶을 그리는 것은, 피에타상의 성모가 예수의 죽음 너머 희망을 염원한 것처럼, 종전을 넘어선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저격수가 된 저 댄스 강사는, 강의실보다 방공호가 익숙한 저 대학원생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쟁은 집단 살인의 현장이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한 사람뿐만 아니라 그에서 시작되는 끝없는 관계까지 파괴하는 행위라고 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책 '인생의 역사'에서 "모든 살인은 언제나 연쇄 살인"이라고 썼다.
결국 전쟁은 그 어떤 예외 없이 무고한 삶을 맹목적으로 끝없이 끊어내는 거대한 비극일 뿐이다.
우크라이나의 댄스 강사는 여전히 총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주 큰 전쟁이 또 시작됐다. 섬광이 가득한 하늘 아래로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의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난다. 평온한 일상을 지키기 위한 더 많은 사람의 사투가 또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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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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