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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의 천만영화 '왕사남'...함께 하는 정서적 몰입 통했다

중앙일보

2026.03.05 20:57 2026.03.0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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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노산군)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사진 쇼박스
2년 만에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 감독, 이하 '왕사남')의 누적 관객 수가 개봉 31일째인 6일 오후 6시 30분, 1000만 명을 넘겼다고 밝혔다.

'범죄도시4'(2024) 이후 2년 만의 천만 영화로, 국내 개봉작 가운데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다. 사극으로는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명량'(2014) 이후 네 번째 천만 영화다.

'김은희 작가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장항준 감독은 연출 데뷔 24년 만에 천만 영화 감독이 됐다. 주연 유해진은 '왕의 남자'(2005), '베테랑'(2015), '택시운전사'(2017), '파묘'(2024)에 이어 다섯 번째 천만 영화 출연 기록을 갖게 됐다.

'왕사남'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간 단종(박지훈)의 마지막 4개월을 그린 팩션 사극이다.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엄흥도(유해진)라는 인물의 짧은 기록에 상상력을 덧입혀 만들었다.

익숙한 소재인 계유정난을 새롭게 비튼 설정, 권력자의 서사가 아닌 민초의 시각에서 접근한 점 등이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비극적 운명의 어린 왕과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유배지 마을 사람들 간의 교감에 초점을 맞춘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조악한 호랑이 CG(컴퓨터 그래픽), 투박한 연출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신분을 초월한 인간애와 연민, 공동체적 가치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웃음과 눈물을 함께 빚어낸 유해진, 박지훈의 호연도 흥행에 한 몫 했다.

장항준 감독은 6일 투자배급사 쇼박스를 통해 "단종이 점차 성장해 가는 강단 있는 모습, 인간으로 살려고 하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으셨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천만 관객 달성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나의 이익을 버리고 옳은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인 '의의(意義)'와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에 대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 후기로는 '관객으로 들어가서 백성으로 나온다', '역사의 빈틈을 온기로 채웠다'를 꼽았다.

개봉 시점도 절묘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한 내용으로 설 연휴 가족 관객을 대거 흡수한 데 이어, 삼일절 연휴에도 247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위력을 과시했다. 한국 영화 경쟁작 '휴민트'(류승완 감독)의 부진, 외화 경쟁작의 부재 등 대진운도 좋았다.



영화관도 청령포도 북적…전국 '단종 앓이' 신드롬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 힘입어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를 찾는 방문객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사진 영월군]

'왕사남' 흥행 덕분에 '단종 앓이' 신드롬까지 일고 있다. 단종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 방문객이 급증하고, 영화의 배경이 된 계유정난을 다룬 책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극장업계 등 영화 시장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왕사남'이 흥행 몰이를 한 지난 2월 전국 극장 관객 수는 1100만 명이었다. 월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긴 건 2023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월 평균 관객 수는 363만 명에 불과했다.

멀티플렉스 CGV 관계자는 "극장가에서 월 1000만 관객은 영화 산업 호황을 상징하는 지표"라며 "짧은 달인 2월에 1000만 명을 넘긴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왕사남'의 흥행을 좌절된 정의, 청년 세대의 고난 등 현실 이슈와 접목시켜 해석할 수 있다"면서 "볼 만한 영화가 있으면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극장서 울고 웃는 정서적 몰입 중요해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누적 관객 수는 673만3000여 명으로, 평일에도 하루 20만~30만 명가량의 관객이 극장을 찾고 있다. [사진 쇼박스]

'왕사남'의 흥행은 한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동시적 감흥이라는 극장 관람 본연의 가치를 일깨워줬다는 의미도 크다. 지난해 연말 개봉한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가 260만 관객을 모으며 깜짝 흥행을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는 분석이다.

아주 새롭거나 세련된 연출의 대작이 아니어도, 함께 웃고 웃을 수 있는 감동적 요소와 카타르시스가 있으면, 얼마든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켰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콘텐트의 범람, 집중하기 힘든 환경 때문에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도 생겨나고 있다"면서 "'왕사남'은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감흥과 정서적 몰입의 가치를 증명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왕사남'의 흥행을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중심으로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콘텐트가 난무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자극적인 콘텐트의 범람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 있다 보니, '왕사남' 같은 따뜻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어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대 한창완 교수(애니메이션학과)는 "극장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단절된 디지털 디톡스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관객에게 깊은 정서적 밀도를 제공하는 영화가 흥행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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