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 이후 국내 기름값과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등이 급등하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오후4시 기준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930.52원으로 전날보다 41.45원 상승했다. 지난 4일 1800원대(1842.55원)를 돌파했는데 불과 이틀 만에 1900원 선에 올랐다. 서울 휘발유가 1900원대에 진입한 건 2022년 8월 이후 약 3년 7개월 만이다. 2014년 8월22일(1929.82원) 이후 11년여 만에 최고치다. 전국 휘발유 가격(1871.83원)도 1900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 발발 직후 6일간 179원가량 급등했다.
경유 가격도 서울은 58.79원 상승한 1954원, 전국은 57.13원 뛴 1887.38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한 건 전국 기준으로 2023년 2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경유를 많이 쓰는 화물차 운전자 등 물류업 종사자들의 고충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름값뿐 아니라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덩달아 뛰면서 전기요금 상승 압력도 커졌다. 한국ㆍ일본ㆍ중국 등의 천연가스 가격 지표인 동북아 LNG 선물 가격(JKM)은 5일(현지시간) 기준 MMBtu(열량 단위)당 15.49달러로 전일보다 2.58% 올랐다.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7일 대비로는 44.4% 급등했다. 같은 기간 원유 가격 상승 폭의 2배 수준이다.
한국은 2024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약 28%를 LNG 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 평균 가격이 MMBtu당 2021년 15.04달러에서 2022년 34.24달러로 두 배 이상 오르자 같은 기간 SMP(도매 전력가격)도 ㎾h당 94.3원에서 196.7원으로 급등한 바 있다. 한전 관계자는 “LNG 가격은 1~2개월, 유가는 5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전기요금 원가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환율 부담까지 겹친 상황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3원 오른(원화가치는 하락) 1476.4원으로 마감했다. 원유 수입 대금을 달러로 결제해야 하는 만큼, 국제 유가 상승기에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국내 수입 물가 충격은 배가 된다. 통상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0.1~0.2%포인트 상승하는 데 여기에 환율 효과가 더해지면 체감 물가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물가 지표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왔지만 안심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날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과 같은 2.0%로 6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중동 사태 이후 국내 주유소 기름값 상승세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지표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지난달 28일 중동 상황 이후 최근 3∼4일동안 휘발윳값이 크게 상승했다”며 “이는 3월 물가지표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국내 유가 상승세부터 진정시킨다는 방침이다.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최고 가격 지정제까지 거론하며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유종별ㆍ지역별 최고가격을 지정하고, 이를 어긴 사업자에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날부터 범부처 합동 대응반이 직접 주유소를 찾아 현장 가격을 점검하고 과도한 인상 행위도 단속하고 나섰다.
그간 정유ㆍ주유업계가 전쟁을 틈타 과도한 이윤을 남기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적잖았다. 이날 서울의 한 주유소를 찾은 김모(43)씨는 “국제 유가가 내리는 추세일 땐 과거에 비싸게 수입했다는 핑계로 국내 판매를 천천히 내리지 않느냐”며 “값을 올릴 때만 전광석화처럼 빠르니 소비자가 그 충격을 다 떠안게 되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실무당정협의에서 "(중동 사태가) 오래가면 문제가 있어서 대체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등의 부분까지 포함해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국가적 위기상황을 악용해 (기름값) 폭리를 취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 않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한편 정유업계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주유소들은 정유사가 공급가를 올린 영향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유사는 개별 주유소가 재고 확보차 소비자 가격을 인상하는 것까지 통제하긴 어렵단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