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파인 다이닝 셰프와 미식계 인사들에게 현재 가장 문제적인 식당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10명 중 8명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알케미스트(Alchemist·연금술사)’를 꼽을 것이다. 5시간이 훌쩍 넘는 식사 시간 동안 50개의 코스가 이어지는 곳, 3층에 걸친 660평의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하루 50명의 손님만 받고 그 50명을 위해 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움직이는 곳, 현재 예약 대기자가 3만 명을 넘는 곳,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스토랑 오픈에 약 200억원이 투입된 곳이다.
2022년 알케미스트가 처음으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50위권에, 그것도 단번에 18위로 이름이 호명됐을 때 식장은 적잖이 술렁였다. 반응은 극과 극. “비싼 돈을 내고 훈계를 들으러 갈 거냐” 하는 냉소와 “이것이야말로 파인 다이닝 미식계 다음 챕터의 한 형태”라는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지난해 3월 직항편도 없는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오직 알케미스트를 경험하기 위해. 알케미스트는 코펜하겐 외곽의 공장 지대에 위치해 있다. 다수의 유튜브 영상과 후기를 통해 위치와 분위기를 예습했지만 어둑해진 저녁에 산업 지대를 지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도착해서도 입구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북유럽 특유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산업단지 한복판에서 거대한 청동 문 하나를 발견했다. 4m가 넘는 위압적이고 묵직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폐공장을 개조한 내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의 적막과는 결이 다르게 높게 열린 공간 위로 조명이 가득한 모습이 식당이라기보다 연극 무대 같았다.
여러 인터뷰와 레스토랑 리뷰에서 이곳의 라스무스 뭉크 셰프는 “요리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노골적으로 요리에 반영된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바다거북, 강제 급식으로 커진 거위의 간, 심장을 형상화한 접시를 통해 장기 기증을 환기 시키는 연출까지. 거대한 돔 스크린과 시각 장치를 동원해 그는 “우리가 먹는 행위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밀어붙인다.
두꺼운 커튼이 열리자 통유리 너머로 실험실처럼 설계된 주방이 펼쳐졌다. 흰 가운을 입은 셰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그곳에서 첫 전채요리가 시작됐다. 오늘의 여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온갖 진귀한 와인들로 가득한 셀러 계단을 따라 도착한 곳은 식당의 심장부라 불리는 ‘플라네타륨 돔(The Dome)’. 천장 전체가 360도 프로젝션 스크린으로 구성된 이 공간에서 식사는 하나의 공연처럼 전개된다. 우주와 심해, 거대한 눈동자와 세포의 이미지가 머리 위를 타고 흐르고 요리는 그 장면과 연결되어 등장한다. 접시 위 음식이 공간 전체와 연결되고, 사운드와 영상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공연이 완성된다.
50여 가지 코스는 하나하나가 날 선 선언문이자 날카로운 질문이다. 미세 플라스틱 입자처럼 연출된 튀김이 함께 나오는 굴 요리 ‘플라스틱 판타스틱’은 바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풍미가 여느 굴 요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가 매일 무심히 삼키는 해양 오염의 잔상을 떠올리도록 의도했다. 철창 안에 갇힌 닭발 요리 ‘자유’는 우리가 소비하는 식재료의 복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장미처럼 겹겹이 쌓은 베이컨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지만 그것이 한 생명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순간,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심지어 내 얼굴을 3D 프린팅해서 만든 젤라틴 디저트를 마주했을 때는 소비하는 주체였던 내가 소비되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과 대면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식사는 끝까지 ‘파인 다이닝’이었다. 5시간의 여정 동안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진 않아도, 적어도 그 주장을 무대 위에서 끝까지 구현해내는 집요함과 완성도 높은 음식과 맛 때문에 결국에는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알케미스트는 미식을 둘러싼 익숙한 정의에 균열을 낸다. 맛과 아름다움, 기술적 완성도만으로 설명되던 미식의 개념을 슬며시 비튼다. 그 경험은 때로는 피로하다. 그러나 50코스가 끝난 뒤에는 미식이란 고정된 장르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계속 변주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 규모의 실험이라면 낭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덴마크의 핀테크 억만장자 부호의 투자가 없었다면 엄청난 규모의 산업 시설을 통째로 개조한 이 공간도, 대규모 R&D팀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알케미스트는 그 이름처럼 자본과 예술, 기술과 철학이 뒤섞인 거대한 연금술에 가깝다.
오늘날 파인 다이닝은 더 이상 작은 주방에서 시작되는 개인적 야심의 결과만은 아니다. 고가의 장비와 공간 설계, 장기적 연구, 글로벌 브랜딩이 맞물린 복합 구조다. 자본은 무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셰프에게 또 다른 과제를 부여한다. 셰프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경영자이고, 전략가여야 한다. 창조성을 유지하면서도 자본과 협업해야 하는 긴장 속으로 자신의 세계를 밀어붙여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 미식의 가장 중요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위해 거대 자본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동시에 창조적 독립성을 유지할 것인가.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또 다른 변주가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박희은 자유기고가.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벤처투자자. 전 세계 도시를 오가며 로컬 미식, 공간, 사람을 통해 문화의 결을 읽는 것을 즐긴다. 셰프를 하나의 창업자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미식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