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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할 맛 나요" 사생활 없고 늙지도 않는 '오빠'들

중앙일보

2026.03.06 13:00 2026.03.0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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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
“사고 칠 일 없는 ‘가상 오빠’가 마음 편해요.”

지난 5일 오후 직장인 성 이현(29)씨의 스마트폰 화면 속 가상 캐릭터가 실시간으로 말을 건넸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PLAVE)’의 라이브 방송이었다. 화면 속 캐릭터는 팬들이 채팅창에 올린 글을 즉석에서 읽으며 농담을 던졌다. 이씨는 “캐릭터 너머로 본체(실제 사람)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동기화된다는 걸 알기에 이 교감이 가짜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오히려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인적·도덕적 리스크를 첨단기술이란 필터가 한 번 걸러준다는 점에서 더 안전하고 완벽한 ‘덕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연예계를 관통하는 뜨거운 키워드는 단연 톱스타들의 ‘인적 리스크’ 관리다. 인기 아티스트의 절세 의혹과 음주운전 등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에게 완벽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팬덤의 높은 기준과 이들의 실제 행태가 충돌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더해 톱스타들이 팬들과 라이브로 소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거침없는 모습은 친밀감을 높이는 동시에 돌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엔터업계, AI 콘텐트 개발 주력
이런 팬들의 피로감 증폭은 통제 가능하고 변치 않는 가상 존재를 새로운 안식처로 탐색하게 하는 동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 김모(23)씨는 지난해 5년간 좋아했던 보이그룹의 팬클럽 활동을 그만뒀다. 멤버의 사생활 논란이 연달아 터지면서다. 김씨는 “밤새 투표하고 앨범을 사며 응원했는데, 한순간의 사고로 팀 전체 이미지가 망가지는 걸 보며 큰 허탈함을 느꼈다”며 “반면 가상의 버추얼 아이돌은 ‘캐릭터’라는 확실한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아티스트의 돌발 행동으로 상처받을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가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고 가상 걸그룹 ‘메이브(MAVE:)’가 글로벌 차트에서 선전하는 현상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팬들은 이미 이들을 ‘가짜’가 아닌 ‘리스크가 제거된 진화된 아티스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직장인 박수민(32)씨는 “버추얼 아이돌은 늙지도 않고, 군대에 가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팬들을 배신하지 않는다”며 “실제 사람이 뒤에 있다는 걸 알기에 실력적인 면에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 ‘인간적 유대’의 본질을 강조하며 가상 존재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전통적인 아이돌 팬덤을 유지하고 있다는 류서인(31)씨는 “아이돌의 매력은 무대 위에서 땀 흘리며 팬들과 눈을 맞추는 ‘생생한 실존’에 있다”며 “때로는 실수하며 성장하는 ‘성장 드라마’가 빠진 기술적 완벽함은 금방 식상해질 것 같다. 상처받더라도 살아있는 스타와 함께 나이 들며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팬덤의 이동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도 구조적 재편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거 기획사들이 아티스트 한 명을 육성하기 위해 수년간 막대한 비용과 리스크를 감내해야 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초기 기획 단계부터 통제 가능한 ‘IP(지식재산권) 중심’의 비즈니스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최용호 갤럭시코퍼레이션 대표는 “버추얼 아티스트는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팬들과의 접점을 무한히 넓혀준다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 개념”이라며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게 핵심으로,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외형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모델’이 엔터 산업의 새로운 카테고리로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한 관계자도 “AI는 이제 작사·작곡뿐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들과의 24시간 맞춤형 소통까지 책임지는 핵심 제작 도구가 됐다”며 “인적 리스크를 상쇄하는 동시에 언어 장벽 없이 전 세계 팬들과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효율성 덕분에 너도나도 가상 아티스트와 AI 콘텐트 개발에 뛰어드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첨단기술과 인간 본연의 감정이 충돌하는 ‘과도기’로 진단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존 인물의 잇단 논란은 팬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주게 되고, 팬들은 이에 대한 방어 기제로 완전무결한 AI 스타를 찾는 것”이라며 “하지만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위로에 인간이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클 수밖에 없는 만큼 가상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오프라인 관계와의 균형을 잡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딥페이크 등 악용 막을 매뉴얼 필요”
김헌식 중원대 특임교수는 세대별 소비 특성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Z세대는 실존 여부보다 ‘내가 원하는 콘텐트의 질’을 우선시하는 탈진실 시대의 특징을 보인다”며 “이젠 엔터테인먼트 산업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려면 단순히 기술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젊은 세대의 다양한 수요를 적극 수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딥페이크 등 악용 사례는 팬덤과의 동반 성장을 저해하는 만큼 시장 논리 측면에서 자정과 운영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버추얼 아이돌은 인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시공간 제약 없이 활동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즈니스적 가치가 크다”며 “가상 존재라도 대중에게 진정한 감동을 준다면 예술로 인정하는 유연한 시각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윤리적 울타리를 만드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원동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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