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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춘향제, 1933년 변산…전북 '100년 유산' 황금으로 바뀐다

중앙일보

2026.03.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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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30일 전북 남원시에서 열린 제95회 춘향제에서 '미스 춘향'에 선발된 입상자들. 연합뉴스


전북연구원 ‘100년 유산 이음 프로젝트’ 제안

1931년 전북 남원 유지와 권번(기생 조합)의 기생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춘향 사당을 세웠다. 그해 6월 20일 단오(음력 5월 5일)에 이곳에서 춘향의 절개를 기리는 제사를 처음 지냈다. 일제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국의 지역 축제의 효시인 남원 춘향제 이야기다. 6·25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이 축제가 2031년 국내 지자체 주관 축제 중 최초로 ‘100회’를 맞는다.

비슷한 시기 부안 바닷가도 들썩였다. ‘서해안의 진주’라 불린 변산해수욕장이 1933년 문을 열면서다. 호남권 최초의 근대식 해수욕장이다. 단순히 구경하는 바다를 넘어 휴양·관광을 즐기는 ‘바캉스’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도 2033년이면 개장 ‘100주년’이 된다.

'2022 대한민국 우수 관광사진'(은상)으로 선정된 변산해수욕장 일몰 풍경. [사진 한국관광공사]


“도시 품격 높이고 관광객 모으는 자산”

춘향제와 변산해수욕장처럼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전북의 역사·문화 자산을 발굴해 관광·문화 콘텐트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전북 곳곳에 흩어져 있는 100년 유산을 하나로 묶어 지역 발전 자원으로 키우자는 취지다.

7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전북연구원은 최근 이슈 브리핑을 통해 “향후 10년(2026~2035년)은 일제 강점기 중반에 형성된 근대 시설·교육·문화 분야 유산이 대거 100주년을 맞는 황금기”라며 ‘전북 100년 유산 이음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전북에서 100년이 된 건축물·장소·노포·축제 등을 전수 조사해 ‘전북 100년 유산’으로 지정한 뒤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연구진은 ‘100년’이란 시간이 지닌 상징성에 주목했다. 연구를 책임진 전북연구원 장세길 선임연구위원은 “30년을 한 세대로 볼 때, 100년은 3세대를 넘어 4세대로 이어지는 ‘세대의 완성’을 의미한다”며 “100년은 개인의 주관적 기억(Memory)이 사회가 합의한 객관적 역사(History)로 전환돼 정통성을 획득하는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했다. 100년 된 장소·축제 등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브랜딩(제품·서비스가 고객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하는 과정) 자산이자 관광객을 모으는 킬러 콘텐트라는 의미다.

전북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이슈 브리핑 표지. 전북 '100년 유산' 이음 프로젝트가 담겼다. [사진 전북연구원]


전주 한옥마을, 군산 이성당, 남원 서도역

연구진은 대표 사례로 독일의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와 국내에선 진로 소주를 꼽았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의 100주년 기념 사업은 독일 전체를 ‘현대 디자인의 발상지’로 알린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하이트진로는 2024년 소주 출시 100주년을 맞아 ‘두꺼비’ 캐릭터를 활용한 복고 마케팅으로 고유한 개성을 살리면서도 신선한 이른바 ‘힙(hip)’한 브랜드로 젊은 세대에게 재인식되는 효과를 거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이 예비 목록으로 분류한 전북의 100년 유산은 적지 않다. 크게 ▶산업·경제(땀과 노동) ▶생활·건축(삶과 공간) ▶교육·종교(정신과 배움) ▶문화·기억(흥과 이야기) 등 네 분야로 나눴다. 1931년 준공된 정읍 운암발전소는 국내 최초 유역 변경식 수력발전소로, 산업·경제 유산에 포함됐다. 군산 내항과 시내를 잇는 터널인 해망굴과 소설가 채만식·최명희의 문학적 배경이 된 임피역(군산)·서도역(남원)도 100주년이 코앞이다.

연구진은 ‘대한민국 3대 빵집’으로 알려진 이성당도 ‘군산 제빵 문화’의 한 축으로 해석했다. 1920년대 일본인이 세운 이즈모야(出雲屋) 화과점의 기술을 전승했다는 이유에서다. 전주 최초 조선 요리 전문점인 행원(옛 식도원)과 황등 육회비빔밥의 원조인 익산 진미식당도 등재 대상으로 봤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옛 히로쓰 가옥), 전주 한옥마을, 전주여고, 원불교 익산 성지도 주요 사례로 들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 한옥마을 전경. 최기웅 기자


“100년 역사 ‘시간여행’으로 묶자”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내놓았다. ‘사라진 유산’ 복원이 대표적이다. 1981년 철거된 옛 전주역사(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와 1931년 첫 춘향제의 소박한 제사상 등을 디지털 트윈 기술로 메타버스(가상세계)에 재현하겠단 구상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사물·시스템을 컴퓨터 가상 공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기술을 말한다.

연구진은 사업 성공 조건으로 민관 협력을 강조했다. 행정이 매입하거나 임대한 유휴 공간을 지역 청년 창업가가 창의적 비즈니스 모델로 채우는 식이다. 100년 전 레시피를 복원한 ‘백년 빵집’, 근대 사진 기술을 활용한 ‘백년 사진관’ 등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전북도엔 ‘전북 100년 유산’ 인증제 도입과 조례 제정, 디지털 아카이브(기록 보관소) 구축 등을 주문했다. 장세길 위원은 “도 차원에서 2030년대에 집중된 100주년 이슈를 하나의 거대한 ‘시간여행’ 브랜드로 묶어야 전북이 대한민국 근대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했다.



김준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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