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출신 인물의 비석이 300여㎞ 떨어진 울산에 서 있다. 울산 울주군 삼동면에 자리한 '원강서원비'다. 비석의 주인공은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주목받는 조선시대 충신 엄흥도. 강원도의 충신 흔적이 왜 남쪽 끝 울산에 남았을까.
엄흥도의 비석이 울산에 세워진 배경은 영화처럼 단종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단종은 세조에게 쫓겨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고, 1457년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하겠다'는 조정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이후 엄흥도는 영월에서 맡고 있던 관직(호장)을 내려놓고 울산으로 피신해 그곳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후손들은 엄흥도가 울산에서 생을 마쳤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그의 삶 마지막 자리에 충의를 기리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1799년(정조 23년) 울산에 거주하던 후손과 지역 유림은 사당 건립을 청원했다. 조정의 허락을 받아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 원강마을에 원강사를 세웠다.
1817년(순조 17년)에는 원강사가 원강서원으로 승격됐다. 이때 높이 2.12m의 원강서원비가 서원 내 충의문 옆에 세워졌다. 비석에는 엄흥도의 행적과 충절이 새겨졌다.
엄흥도는 1876년 '충의공' 시호를 받았다. 이후 서원과 비석은 복원과 이전을 거치며 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1988년 울산 온산공단 조성 부지에 편입됐다. 1995년 현재의 울산 울주군 삼동면으로 다시 옮겨졌다. 원강서원비는 1998년 10월 울산시 문화유산자료 제10호로 지정됐다.
엄흥도를 기리는 이 비석은 최근 이전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일부 주민들은 "비석이 마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역과 인접 지역은 일정 범위 내에서 개발 행위가 제한되고, 건설 공사 등을 위해서는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 주민들은 이를 재산권 침해로 보고 있다. 비석을 이전하거나 문화유산자료 지정을 해제해야 한다는 요구와 함께 주변 토지와 건축물에 대한 규제 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울산시는 신중한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원강서원비의 소유권이 영월 엄씨 문중에 있어 이전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주민 재산권 보호와 문화유산 보존 가치를 함께 고려해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영월 엄씨 문중의 한 후손은 "울산에서 불천위(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지내는 것) 가문은 드물고 귀하다"며 "조선시대 문화적·역사적 관점에서 원강서원비를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