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낭랑한 알림음과 함께 울리는, 반갑지 않은 직장발 메시지.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업무 지시는 다음 날의 피로를 키운다. 정부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도입을 추진하면서 근무시간 밖 연락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근로시간 단축 법제화가 상반기 추진되는 가운데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함께 다룬다. 다만 일률적으로 금지하거나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자발적으로 도입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이를 운영하도록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거나 고용노동부가 선정하는 우수기업 포상 등 다양한 인센티브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노사정이 합의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에는 '근무시간 외 불필요한 업무지시로부터 보호' 문구가 담겼다. 국회에 발의된 실근로시간 단축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도 사업주가 전화·문자·이메일·SNS 등으로 이뤄지는 근로시간 외 업무지시를 제한하거나 근로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처럼 의무 규정은 아니지만, 단체협약 등으로 도입되면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갈등이 일 수 있다.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연락(지시)의 기준을 두고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용연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불필요함'의 기준은 상사와 부하 직원은 물론 동료 사이에서도 제각각일 수 있다”며 “도입 과정이나 실제 운영 단계에서 필요한 연락이었는지를 놓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계가 강제·처벌규정 방식에 반발하는 이유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근거 규정을 시작으로 사회적 합의를 쌓아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강행규정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노동계가 양보한 건 첫발을 내딛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근거 규정을 통해 단체협약에 관련된 규정을 요구하고 노사가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기준이 만들어진다면 향후 법제화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정부가 일률적인 기준을 강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6년 세계 최초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도입한 프랑스는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노동조합과의 연례 단체교섭에서 권리 행사 방식 등을 반드시 협의하도록 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내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도입 초기에는 별도의 제재 규정이 없었지만, 현재는 단체교섭 의무를 위반할 시 처벌이 가능하다.
호주는 근로시간 외 모든 형태의 연락에 대해 근로자가 확인·응답을 거부할 권리를 규정했다. 분쟁 발생 시에는 공정노동위원회가 연락의 목적과 방식, 방해 수준, 보상 제공 여부 및 정도, 직무 특성과 책임 범위, 개인적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 게 되어 있다.
강제 규정이 아닌 만큼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단기간에 빠르게 퍼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제도가 의무가 아니더라도 늦은 밤이나 주말에 카카오톡 등으로 과도한 업무 연락을 하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상사가 근무시간 외에 지나치게 빈번하게 연락하고, 즉시 회신이 없다는 이유로 곧바로 전화까지 하는 경우라면 상황에 따라 징계 사유가 되거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앙노동위원회는 업무시간 이후 여러 차례 업무 지시를 한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이를 이유로 한 징계를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변호사는 또 “업무상 긴급성이나 필요성 없이 근로시간 외에 잦은 연락을 하는 경우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할 수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근무시간 외 연락으로 실제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연장근로로 인정될 수 있고, 그 결과 주 52시간제 위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형사책임까지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