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당국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군사 공격이 이뤄지더라도 이란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한 기밀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7일(현지시간)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작성한 기밀 평가 보고서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감행하더라도 이란의 군부와 성직자 중심 권력 구조를 무너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달 28일 이란을 공격하며 전쟁을 시작하기 약 일주일 전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내용은 이를 잘 아는 관계자 3명이 WP에 확인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이란 지도부만을 겨냥한 제한적 공격과 지도부 및 정부 기관 전반을 겨냥한 광범위한 공격 등 두 가지 군사 작전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더라도 이란의 성직자·군부 체제는 권력 연속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이란 내부에서 분열된 반정부 세력이나 야권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언해 온 ‘이란 핵심 지도부’ 및 정권 교체 구상과는 거리가 있는 분석이다.
NIC는 미국 정보공동체를 구성하는 18개 정보기관의 분석을 종합해 국가안보 사안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는 조직이다. 베테랑 분석가들이 참여해 정보기관의 집단적 판단을 담은 기밀 보고서를 작성한다.
WP가 이에 관해 확인을 요청하자 미 중앙정보국(CIA)은 관련 질문을 DNI로 넘겼고 DNI는 논평을 거부했다. 백악관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군사 작전을 승인하기 전에 해당 보고서를 보고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 미국의 군사 작전은 인도양에서의 잠수함 작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 인근의 미사일 대응 작전까지 확대되는 등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
백악관은 군사 작전의 목표가 정권 교체가 아닌 군사력 무력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애나 켈리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장대한 분노 작전(Operation Epic Fury)’의 목표를 분명히 밝혔다”며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생산 능력을 파괴하고 해군을 무력화하며 대리 세력에 무기를 공급하는 능력을 차단하고 핵무기 보유를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보고서는 미군 지상군 투입이나 이란 내 쿠르드족을 무장시켜 반란을 유도하는 방안 등 다른 시나리오는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보고서가 분석한 대규모 작전이 현재 진행 중인 군사 작전과 동일한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고서가 예상한 권력 승계 절차는 현재 미·이스라엘의 공습 속에서도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는 88명의 성직자로 구성된 헌법기관인 ‘전문가회의’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안보 기관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하메네이의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서방 안보 당국자에 따르면 혁명수비대는 모즈타바를 지지하고 있지만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인 알리 라리자니 등 일부 권력 핵심 인사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이 2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이란의 “무조건 항복(UNCONDITIONAL SURRENDER)”을 요구하며 차기 지도자 선정에 개입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BC뉴스와 인터뷰에서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무능하고 가벼운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이란이 좋은 지도자를 갖기를 원한다.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는 소셜미디어 X(엑스·옛 트위터)에서 “이란의 운명은 자랑스러운 이란 국민이 결정할 것”이라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까지 이란 내부에서 대규모 민중 봉기나 권력 핵심부의 분열이 나타났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란 보안 당국은 올해 1월 경제난을 배경으로 일어난 시위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를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성직자·군부 권력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정치적 결과를 좌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홀리 대그리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에게 굴복하는 것은 이란 체제가 지켜온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성직자 권력 핵심부는 이념적으로 결속돼 있으며 미국 영향력에 저항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잔 말로니 부소장도 “이란 체제와 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을 둔 평가로 보인다”며 “현재 이란 내부에는 현 체제에 맞설 다른 세력이 사실상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