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됨에 따라 중동 지역에 체류 중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 초미의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중동 지역 공관장이 대거 공석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현재 이재명 정부 출범 후 9개월이 지났는데도 중동 지역 19곳 중 6곳의 공관장이 비어 있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에는 대사가 없고, 중동 지역 허브 공항으로 한국 여행객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된 두바이 총영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튀르키예, 쿠웨이트, 이집트, 알제리 등의 대사 자리도 비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비상 철수 계획을 이중·삼중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달라”며 “필요하면 우방 간 공조도 하고 군용기·전세기·육로 교통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정작 현지에서 이런 당부사항 이행을 총괄 지휘해야 할 공관장이 공석인 황당한 상황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14개 중동 국가에는 우리 국민 1만8000명이 머무르고 있다. 단기 체류자는 4900명으로, 이 중 3500명이 항공편 취소로 귀국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지역 공관은 현지 직원을 제외하면 5인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중동 국가들이 고위직과의 소통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공관장 부재 상황은 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다. 여야 의원들이 지난 6일 국회 외통위에서 한목소리로 이런 상황을 질타한 이유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인사가 늦어지면서 현재 재외 공관장이 공석인 국가는 49곳이라고 한다. 공관장 부재로 인해 대응이 늦거나 부실했던 사례는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근로자 구금이나 캄보디아 한국인 피살·구금 사태 때 겪은 바 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늦은 공관장 인사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두고 외교가 안팎에서는 특임 공관장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자리다툼 때문이라느니, 외교부 소속 대사 후보자들의 과거 정부 때 행적에 대한 검증 때문이라느니 뒷말이 무성한 지 오래다.
재외국민 보호는 정부의 기본 책무다. 정부는 공관장 인선을 서둘러 스스로 외교력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끝내야 한다. 특히 이번 중동 사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사태 이후 변화된 중동 지역의 지정학을 바탕으로 방산 등 국익 외교를 펼쳐야 할 사람도, 6월 지방선거에서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독려할 사람도 공관장이다. 사정이 있다면 중동 지역 주요 공관장이라도 우선 임명해야 한다. 그래야 이 대통령 말대로 당장의 국민 안전을 제대로 챙길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