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 전쟁터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소캠(서버용 저전력 D램 모듈·SOCAMM2)’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HBM이 AI의 두뇌(그래픽처리장치·GPU)에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실어 나르는 ‘혈관’이라면, 소캠은 방대한 데이터를 적은 에너지로 끈기있게 처리하는 AI 서버의 ‘근육’인 셈이다. 이 시장을 선점하려는 메모리 3사의 ‘3파전’이 256기가바이트(GB)라는 초고용량 승부수로 새 국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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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3위 ‘꼬리표’ 뗄까…마이크론 승부수
8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세계 최초로 256GB 용량의 소캠2 고객 샘플을 출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으로 내세운 192GB 제품보다 약 33%나 용량을 끌어올린 수치다. 용량이 커질수록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한 번에 더 많이 처리할 수 있어 대규모 모델 추론이나 복잡한 작업 처리에 유리하다.
만년 3위 마이크론의 이번 행보는 ‘기술적 자존심’ 회복과 맞닿아 있다. 마이크론은 소캠2의 전신인 ‘소캠1’ 시장에서 가장 먼저 엔비디아의 승인을 받았지만, 소캠2로 규격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쳤다. 라즈 나라심한 마이크론 수석 부사장은 “이번 제품으로 업계에서 가장 작은 크기와 최고 용량, 최저 전력을 구현했다”며 “데이터센터에서 전기를 덜 쓰면서도 더 큰 용량 메모리를 사용하는 흐름을 앞당길 것”이라고 자평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D램 시장 점유율은 삼성전자(36.6%), SK하이닉스(32.9%), 마이크론(22.9%) 순이다. 전통적인 범용 D램 시장에서 격차가 뚜렷한 만큼,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소캠2가 확실한 ‘와일드카드’인 셈이다.
소캠2 시장의 주도권은 한국 기업들이 쥐고 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192GB 소캠2 양산에 돌입하며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본부장은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소캠2 공급량은 100억Gb로 추정되며 이는 엔비디아 소캠2 수요의 약 50%”라며 “공급 점유율 1위가 예상된다”고 했다. 삼성은 10나노급 5세대(1b) 공정을 적용해 안정적인 수율과 성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SK하이닉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1월 콘퍼런스콜에서 “10나노급 6세대(1c) 공정 전환을 통해 소캠2 제품군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HBM 시장에서 다진 기술적 신뢰도를 소캠으로 전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추정되는 SK하이닉스의 수주 물량은 마이크론 보다 앞서있다는 평가다. 세 회사는 모두 엔비디아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6’에서 소캠2 메모리를 소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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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캠2’가 뭐길래... 퀄컴·AMD도 ‘눈독’ 이유는
소캠은 서버에 장착하는 모듈형 저전력 D램(LPDDR) 메모리다. 하나의 모듈에 저전력 D램 4개가 탑재되는 구조로, 기존 서버용 메모리보다 데이터 전송 통로가 많아 속도가 빠르고 전력 효율이 높다. 특히 기존 서버 메모리와 달리 탈부착이 가능해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꼽힌다. 서버를 통째로 교체하지 않고 메모리 모듈만 교체해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확대의 분수령은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출시할 AI 가속기 ‘베라루빈’이다. 엔비디아는 베라루빈 중앙처리장치(CPU)인 ‘베라’ 옆에 소캠을 붙이기로 확정했다. 여기에 모바일 칩의 강자 퀄컴과 엔비디아의 대항마 AMD까지 소캠 도입을 검토하면서 성장 가능성도 더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소캠을 포함한 저전력 D램 시장은 2033년까지 연평균 8.1%씩 성장해 약 35조 5000억원(258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3사가 비슷하지만, 대량 공급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수율과 가격 경쟁력을 잡아내는 ‘한 끗 차’의 최적화 능력이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