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하청노조는 올해 들어 두 달 사이에만 네 차례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한화오션은 원청이 하청노조의 사용자라고 볼 수 없다며 교섭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10일부터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넓게 인정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교섭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하청노조가 요구하는 정규직 수준의 임금이나 휴가비 지원도 원청의 교섭 테이블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하루 앞둔 가운데 하청노조는 대대적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하청노동자 14만여명이 교섭 요구에 나설 것으로 봤다.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부문과 건설·서비스업, 공공기관·대학 등 공공부문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달 내 원청 교섭에 들어갈 계획이다. 7월에는 총파업까지 예고했다.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교섭에 응하지 않는 원청 사업장에는 집중 압박 투쟁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원청을 넘어 발주처까지 겨냥했다. 울산 ‘샤힌 프로젝트’ 원청은 현대건설 컨소시엄(건설사)이지만, 플랜트건설노조는 발주처인 에쓰오일에 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주처인 SK하이닉스도 타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매뉴얼만 보면 하청노조의 상대가 최상위 원청이나 발주처가 될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기업들은 10일 이후 쏟아질 교섭 요구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중견 제조업체 관계자는 ”법 시행 2주 전에야 나온 정부 매뉴얼에도 ‘실질적 사용자성’ 지침이 모호하다. 결국 법적 다툼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정부 해석지침에 따르면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 등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면 실질적 사용자로 간주한다. 사용자성은 노동위원회가 판단하지만, 불복하면 결국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노조와 기업의 해석이 달라 굉장한 혼란이 될 거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태어난 셈이라 향후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은 하청노조가 여럿인 만큼 다수의 개별 협상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앞서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를 꺼냈지만,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 분리교섭을 기본으로 하고, 하청노조가 여럿일 경우엔 교섭단위 분리신청도 가능하다. 민주노총은 각 사업장별 분리교섭 신청을 준비 중이다. 박 교수는 “정부가 교섭단위를 ‘전체 하청 노동자 집단’이란 기묘한 용어로 표현하며 범주화를 포기한 상황이라 원청이 1차부터 n차에 이르는 수백개 하청노조의 상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교섭 의제가 제한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임금이나 수당은 원·하청 교섭대상이 아니지만, ‘산업안전’ 등 사용자성을 인정받기 쉬운 의제로 교섭을 이끌어낸 뒤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교섭 요구안에 ‘임금인상’을 포함했다.
인수합병(M&A), 구조조정 등 기업의 경영판단도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새 법에서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면 교섭 대상이 되는 길을 열어뒀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이런 입법을 한 전례가 없어 앞으로 어떤 장애물이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교섭 결렬 이후 파업, 손해배상 등이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