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에서 별다른 불편이 없음에도 개인적 선호만을 이유로 여권의 영문(로마자) 성명을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덕)는 여권의 성 영문 표기를 ‘LEE’에서 ‘YI’로 변경해 달라며 이모(36)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씨는 성을 ‘LEE’로 표기한 여권을 사용해 오다 2024년 5월 외교부에 이를 ‘YI’로 변경해 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재판 과정에서 “1차 여권 발급 시에 성을 ‘YI’로 표기해 신청했으나,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LEE’로 고쳐 여권을 발급했다”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문 성을 YI로 표시해 왔고 금융거래, 영어능력시험, 사원증, 군 전역 증명서에서 ‘YI’로 표기했으므로 여권의 로마자 표기도 이에 맞게 YI로 맞춰 변경하길 희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외교부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은 해당 국민에게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생활상 불편을 제거해야 할 필요성이 큰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 로마자 성명 변경이 무분별하게 허용될 경우 출입국 심사와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고, 외국에서 한국 여권의 신뢰도가 낮아져 비자 발급이나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YI’로 표기를 바꾸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에서 실제 불편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신용카드나 영어능력시험 성적증명서, 사원증 등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변경해 재발급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씨 역시 여권법 시행령이 규정한 로마자 성명 정정ㆍ변경 사유 제1호부터 제10호까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보충 규정인 제11호인 ‘그 밖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근거로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도 생활상 불편이 아니라 단지 ‘YI’ 표기를 선호하는 개인적 신념 때문에 변경 신청을 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아무런 불편이 없고 단지 개인적 만족을 위한 경우를 11호로 포섭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들은 모두 여권법 시행령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고의 여권 로마자 표기를 신청대로 변경하지 않으므로 인해 원고에게 발생할 사익 침해의 정도가 그리 크지 않으므로, 이 사건 처분에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이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