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톤)당 150만원이었던 플라스틱 원재료 가격이 지금 170만원대로 올랐습니다. 판매가에서 원자재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데 납품 단가는 못 올리니 속이 타들어가요.”
전북에서 플라스틱 가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요즘 중동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유가 상승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데다 원화가치까지 떨어지다 보니 제품 마진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업황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부담이 이중·삼중 겹쳤다”며 “유가가 오른다고 정유업체가 기존 재고 가격까지 올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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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고에 빠진 중소기업
미국·이란의 무력 충돌로 환율과 유가가 출렁이자 중소 제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운송비에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며 수출 기업뿐 아니라 내수 기업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중소기업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2~3%대인 경우가 태반이어서 ‘팔수록 손해’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서울의 한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 대표는 “제품의 60%는 해외로 수출하다보니 물류비나 환율 변동이 수익성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며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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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비 인상 ‘직격탄’
이들 기업은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장기계약을 통해 원료나 물류망을 미리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유가·환율 변동 대비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유가가 올라 연료비·운송비·원재료비가 줄줄이 오르고 전쟁 위험으로 보험료까지 오르면 원가 상승률이 영업이익률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충남의 한 제지업체 대표는 “수입 원자재를 들여와 완제품을 수출하는 구조인데 운임이 급등하면 타격이 크다”며 “대기업에 비해 물량이 적다보니 협상력도 떨어져 가격을 올려도 대안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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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물가도 ‘빨간불’
유가와 환율 변동으로 식탁 물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밀가루·설탕·팜유·옥수수·대두 등 핵심 원재료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초콜릿 등 일부 가공식품의 경우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가격 인상을 검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식품업체 관계자는 “유가가 오르면 식품업계의 제조 원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데 환율까지 오르고 있어 상황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부 김모(50)씨는 “나물이며 과일, 고기까지 가격이 올라 장 볼 때 살게 없다”며 “과자나 커피 가격도 비싸져서 전보다 덜 사고 있는데 값이 더 오르면 더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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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생활에도 여파
출렁이는 유가는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리터)당 1902.7원으로 전날보다 7.4원 올랐다. 경유 가격은 L당 1926.3원으로 8.6원 상승했다.
새벽배송을 담당하는 택배기사 김모(34)씨는 “기름값이 평소보다 50만원은 더 들 것 같다. 수입을 메우기 위해 낮에 4시간 더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47)씨는 “최근 투자한 주식이 많이 올라 씀씀이가 좀 커졌는데, 주유가격이 오르고 주식까지 폭락하는걸 보니 정신이 번쩍 난다”며 “신차 구매는 당분간 접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오일 쇼크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원유와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며 “인플레이션 압력이 서민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물가 안정과 실물경제 회복을 모두 고려하는 신중한 거시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