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1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환율은 상승), 한국 경제가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3고(高)’ 현상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시장금리까지 오르면서 가계와 기업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 기준 전 거래일보다 19.1원 오른 1495.5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가장 높다. 이날 1493.0원에 개장한 환율은 오전 한때 1499.20원까지 올랐다. 2009년 3월 12일 장중 고가(1500.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인 영향이다. 환율은 지난 4일 새벽 야간 거래에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1500원 선을 넘어선 바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당분간 글로벌 외환시장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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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고환율에 '물가쇼크' 재현되나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가 입는 타격은 크다. 원화가치 하락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어서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유가와 환율이 각각 10% 상승할 때 소비자물가는 각각 0.2%포인트·0.3%포인트씩 오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은이 지난달 경제전망에서 배럴당 64달러의 국제유가를 전제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2.2%로 전제한 점을 고려하면, 사태 장기화 시 물가상승률이 다시 3%대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 기업 입장에서도 원재료 도입 비용이 커져 수익성이 나빠진다. 과거에는 환율 상승이 한국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수출 전략이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바뀌었고, 해외 현지 생산 비중이 커지면서 상관관계는 약해졌다. 정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동 사태는 경상수지 흑자 폭을 줄여 원화의 평가절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와 환율이 치솟던 2022년 한국의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가 있던 1998년(7.5%) 이후 24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무역수지 적자도 472억 달러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당시 수출액이 전년 대비 6.1% 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지만, 수입액이 전년보다 18.9% 늘어난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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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금리도 들썩…'S'의 공포 덮친 시장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 금리도 들썩이고 있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장보다 0.193%포인트 오른(가격은 하락)한 3.42%를 기록했다. 2024년 6월 3일(3.434%) 이후 가장 높다. 10년물 금리도 3.739%로 0.123%포인트 올랐다.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정학적 상황이 환율뿐 아니라 이자율 상승에도 영향을 주면서 삼중고를 맞는 상황에 처했다"며 "금리 인하도 지연되면서 성장률 하방 압력까지 같이 나타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시도 급락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96% 급락한 5251.87에 장을 마쳤다. 개장 직후부터 과도한 급락세가 나타나면서 프로그램 매도 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 조치가 발동돼 5분간 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이 정지되기도 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경우 당분간 금리 동결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가깝게 상승한다면 긴축 전환 우려가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