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 단종의 삶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육지 속의 섬 청령포(淸泠浦). 지난 6일 찾은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는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뒤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었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는 배를 타야만 입장이 가능한데 최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으로 관광객 발길이 이어졌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청령포에 들어서자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이 숲은 2004년 산림청이 천 년의 숲으로 지정했다. 숲 안으로 들어가자 단종이 머물던 기와집을 재현한 단종어소(端宗御所)가 나왔다. 바로 옆엔 단종의 유배지임을 알리는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한 금표비(禁標碑) 등이 있었다. 또 단종어소를 향해 절을 올리는 듯 몸을 낮춘 ‘엄흥도 소나무’도 보였다.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보고 청령포를 찾았다는 이순화(69·강원 홍천군)씨는 “이런 곳에서 어찌 지냈을지 애처롭고 딱한 마음이 들었다”며 “사방이 막혀 답답했을 단종을 생각하니 울컥했다”고 말했다.
숲속 깊은 곳엔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단종의 한이 서려 있다는 관음송(觀音松)으로 높이가 30m에 이른다. 관음송은 가슴높이 둘레가 5.19m이고, 땅바닥으로부터 1.6m 정도에서 두 개로 갈라져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모양이다.
관음송의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데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유배 생활을 할 때 이 나무에 걸터앉아 한양 쪽을 바라보며 오열했다고 한다. 단종의 슬픔을 ‘보고 들었다’는 뜻에서 볼 관(觀), 들을 음(音)을 붙여 지었다.
전북 전주시에서 온 김은주(63·여)씨는 “배를 타고 들어오는데 이곳이 최적의 유배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어린 왕이 겪었을 일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영월에는 청령포 외에도 단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으로 매년 ‘단종문화제’가 열리는 장릉(단종의 묘)이 있다. 장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다. 영월군은 1967년부터 제례와 민속신앙, 국장재현 등으로 단종의 영면과 재림을 기원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59회째를 맞는 단종문화제는 4월 24~26일 열린다. 영월읍엔 청령포 침수 위험에 따라 단종의 새 거처가 된 관풍헌이 있다. 이곳에서 두 달 머문 단종은 결국 사약을 받았다. 문종과 현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단종은 세종의 사랑을 받은 총명한 왕자로 조선 왕조 유일한 완전한 정통 핏줄이었다. 1452년 12살에 즉위했지만 1455년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내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16세에 청령포로 유배된 그는 17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후 1698년 숙종 때 복위됐다.
개봉 한 달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에 힘입어 청령포와 장릉 관광객도 늘고 있다. 영월군에 따르면 지난 2일 기준 올해 누적 관람객은 9만444명으로, 지난해 26만3327명의 34% 수준이다. 최명서 영월군수는 “영화로 단종의 역사와 영월의 가치가 재조명된 만큼 이번 문화제에서 역사·문화·관광이 어우러진 영월의 매력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