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근로조건에 아무 영향도 없는 사업 결정이 어디 있나요. 공장에 로봇 하나 들이기 힘들어질 거란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0일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두고 이렇게 토로했다. 산업 현장에선 신기술 도입부터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까지 줄줄이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에선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 결정’이 추가됐다. 기존엔 정리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만 쟁의 대상이었지만, 노동권 보장을 이유로 그 범위를 훨씬 넓힌 것이다.
노동부는 해석지침을 통해 ‘정리해고·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만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단서를 붙였다. 예컨대 합병·분할·양도·투자·신기술 도입 등 사업 결정 자체만으로 교섭을 요구하거나 파업에 나설 수는 없고, 인력 조정 등 근로조건에 실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산업 현장에선 ‘근로조건에 미치는 영향’의 판단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의견이 많다. 어떤 사업상 결정이든 근로자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결국 노조는 일단 교섭을 요구하고 볼 테고, 기업은 일일이 노동위원회나 법원 판단을 받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노조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발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겨냥해 “노사 합의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반발했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북미 생산공장에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계획인데, 만약 국내 공장에도 아틀라스를 도입할 경우 노조가 ‘기존 생산직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파업에 나설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현대차 노사 단체협약엔 기술 도입으로 인력 전환 배치가 예상되는 경우 고용안정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노란봉투법은 단협으로 협의할 사안을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현재 충남 대산 산업단지에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을 합병하고 110만t 규모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을 중단하는 내용의 ‘1호 구조개편안’이 확정됐고, 전남 여수와 울산에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NCC 설비를 줄이는 작업이라 인수합병, 인력 재배치 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구조조정이나 신기술 도입은 사실상 없다”며 “교섭과 파업으로 피지컬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도입이 지연되면 국가 산업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각 지방노동청 등에서 대응 상황을 점검 중이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날 간부회의를 열어 “아직 발생하지 않은 갈등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노사 간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경영계는 대화와 책임있는 자세로 상생의 해법을 찾기위해 노력해달라”며 “노동계 역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절제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