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태어나 지금도 종로에 사는 이가 종로의 역사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대한 책을 보내왔다. 책을 통해 조선 건국 이후 우리 역사 절반이 서울에서 이루어졌고, 서울의 역사는 곧 종로의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로 이곳저곳을 소개한 책 속엔 낙산공원도 소개되어 있었는데 생소하게 느껴졌다.
생소함은 곧 호기심으로 이어져 눈이 소복이 쌓인 날 아침 낙산공원을 찾았다. 입구 안내판엔 서울을 둘러싼 18㎞ 한양도성 중 낙산 구간은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약 2㎞에 이른다고 적혀 있었다.
낙타 등 같은 능선의 낙산공원
‘케데헌’ 덕에 외국인 관광객 몰려
모래언덕 닮았다는 중동 부부도
성곽 외벽을 따라 낙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조선 초에 축성된 성곽엔 거친 세월을 견디지 못해 주저앉은 곳도 보이는데 그 위엔 돌을 다시 쌓은 흔적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니 돌 위에 돌을 쌓아 올리며 손등으로 땀을 훔치는 석공들의 모습이 보이고, 돌을 나르는 인부들의 앓는 소리도 들린다. 600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천천히 산을 올라갔다. 낙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해보기도 했다.
성곽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자 사방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앞에는 멀리 남산이 하늘과 경계를 이루고, 오른편엔 600년 전 한양이, 왼편 동쪽에는 오늘의 서울을 짓는 타워크레인들이 곳곳에 보인다. 잠시 숨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서울을 품은 북한산이 듬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산에 오르는 동안 낙산의 ‘낙’자를 즐거울 낙(樂)자이거나 서쪽 하늘의 낙조가 아름다워 떨어질 낙(落)자로 썼으리라 짐작했는데, 낙산 정상 주변에서 ‘駱山體育會(낙산체육회)’라는 나무간판을 보는 순간, 낙자가 낙타(駱駝)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종로 이야기를 쓴 이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낙산의 능선이 낙타의 등처럼 굽어 옛날에는 낙타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낙산공원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는데, 애니메이션 영화 ‘케데헌’에 낙산공원이 나왔다는 말이 귀 너머로 들려왔다. 궁금한 마음에 곧바로 영상을 살펴보았다. 몇 장면에서 기시감이 느껴져 찬찬히 보니 주인공들의 등 뒤에는 낙산성곽이 보이고 그 뒤에는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잠시 정상에 머물다 북한산 쪽으로 내려오며 오래된 마을과 마주했다. 마을 주택가의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이 수십 년 전의 추억으로 이끌었다. 마당이 있는 작은 카페가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길을 걷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모두 밝고 편안한 표정이다.
아름다움은 찾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설 연휴에 다시 낙산을 찾았다. 낙산공원이 ‘케데헌’으로 많이 알려졌는지 지난번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성은 저고리에 노리개를 달고 머리에는 큰 비녀까지 꽂고 있다. 그녀의 동행은 양손으로 치맛자락을 쥔 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산에 오른다. 모두 흡족한 표정이다. 산 내리막의 ‘케데헌’ 배경지에서는 남녀가 서로의 사진을 담고 셀카를 찍기도 한다.
북적거리는 곳을 지나 한적한 성곽길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남녀가 커플 사진을 부탁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보낸다. 중동에서 서울로 신혼여행 왔다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거뭇한 수염에 갓을 쓴 하산과 얌전하게 보이는 야스민에게 서울에 온 소감을 물었다.
여러 나라로 출장 다닌다는 하산이 말했다. “이곳에 오니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언덕이 떠오릅니다. 서울을 둘러싼 산의 능선과 모래언덕의 곡선이 비슷해요. 차이가 있다면 서울의 산 능선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겠지만 모래언덕은 지난밤에 분 바람에 따라 다음 날 아침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내일 아침 모래언덕이 어떤 모습일지는 신밖에 모르지요. 중동사람들은 그럴 때 ‘인샬라’라는 말을 합니다. 신의 뜻이라는 말이지요. 아마 들어 보셨을 겁니다.”
야스민이 말을 이었다. “중동에서는 모래언덕의 곡선은 낙타 등과 같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세상 사람들의 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낙산공원에서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 먼 옛날 낙산이라는 이름을 지은 이는 어디서 낙타 이야기를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