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였을 때 나는 멕시코 해먹 안에서 자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 해먹을 구해 왔는데, 낭만적이라서가 아니고 집이 너무 좁아 나를 위한 공간이 공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방에는 벽마다 천장 끝까지 높이 쌓아놓은 칠천 권의 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밤이면 이 책들은 나뭇잎이 서로 겹겹이 얽힌 채 자라난 나무들로 변했다. 트럭이 집 밖을 지나갈 때면 나의 멕시코 해먹은 그 숲에서 그네처럼 흔들렸다. -다와다 요코(사진) 『영혼 없는 작가』 중에서.
“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다른 고장에는 다른 물이 있단다.”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을 일본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예민하고 매혹적인 문장들이 빛처럼 쏟아져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뉴요커의 평이 딱이다. “다와다 요코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신화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독일에서 자라 두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의 산문집이다. 그의 남다른 언어 감각은 이중 언어 구사자라는 배경에서 온 것이다. 가령 ‘성’이 있는 언어를 처음 접했을 때 작가는 “이를테면 만년필을 보면서는 그게 실제 남자라고 느끼려고 애를 썼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이다. 나는 만년필을 손에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반복했다. 남자, 남자, 남자. 이 마법의 주문은 천천히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언어에 대한 비범한 통찰로 이어졌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외국어를 쓸 때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것을 갖게 된다. 이 제거기는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내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가끔 나는 모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그 사람들은 착착 준비해 척척 내뱉는 말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