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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돌봄…“부모 부양은 자식 몫” 5명 중 1명만 동의

중앙일보

2026.03.09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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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박모씨와 형제들은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때때로 돈을 부친다. 하지만 형편상 박씨 형제들이 병원비·간병비 등을 온전히 책임지거나 매달 꾸준히 드리긴 쉽지 않다. 박씨는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아내와 자식도 챙겨야 하는 가장이라 부모님 생계나 병원비를 전적으로 부담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의 60대 정모씨는 하루 3시간씩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방문해 돌보는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한 달 60만~70만원을 번다. 고된 일이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한다. 정씨는 “기초연금까지 더하면 근근이 먹고살 수준은 된다”라며 “죽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 부양은 자녀의 몫’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5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6월 전국 7300가구를 조사한 결과 부모를 모실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은 20.7%에 그쳤다. 국민 5명 중 1명만이 자녀의 부모 부양책임에 찬성하는 셈이다.

조사 결과 부모 부양의 자녀 책임에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47.5%)이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직장인 이모(27)씨는 “긴 인생을 살면서 노후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라며 “부모를 모시고 싶지도 않고, 나 역시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은 경제 형편과 큰 관련이 없었다. 저소득 가구의 부모 부양 찬성 비율(20.7%)과 일반 가구 비율(20.6%)은 거의 차이가 없다.

앞서 2007년 한국복지패널 첫 조사 당시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는 의견이 52.6%에 이르렀다. 2013년 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처음으로 역전된 이후 격차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인식 변화 속에 ‘마처 세대’(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를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선 노후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나오고 있다. 은퇴 준비와 관련한 온라인 카페엔 “50대인 우리가 마지막 부모 부양 세대다. 장례도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연금이 적고 걱정도 많을 텐데 노후는 이제 각자도생”이라는 글이 이어졌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자 중 생활비를 자녀나 친척에게서 지원받는다고 답한 비율은 10.3%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효(孝)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짊어졌던 돌봄의 영역이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며 “가족이 책임지기 어려워진 만큼 공적 부양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AgeTech연구소장)는 “막내 베이비붐 세대인 1963년생이 65세가 되는 2028년,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이 75세가 되는 2030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그 전까지 산업 생태계와 정책이 마련돼야 사회 전체의 돌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채혜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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