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큰 환절기라 그런지 요즘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단순 독감인지 코로나바이러스의 변형인지 걸렸다 하면 최소 1~2주는 앓아눕고 체중도 몇 ㎏이나 빠진다. 독감에 걸리면 그러려니 하고 병원에서 주사 맞고 처방받아 약 먹고 견딘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코로나19 사태 당시 이물질 신고가 접수된 백신과 동일 제조번호의 백신 1420만 회분이 접종 보류 조치 없이 투여된 사실까지 확인됐다니 더 불안하다. 청와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관련 정부 부처는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 WHO 탈퇴로 각자도생 우려
복지부·질병청만으론 대응 한계
국가위원회, 외교·기후부 포함을
지난해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코로나19 같은 제2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 팬데믹 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이 채택됐다. 첫째,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에 무방비 상태로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 코로나19 당시 개발도상국들이 느낀 배신감을 해결하려는 취지도 있다. 유럽·미국 등 선진국도 엄청난 피해를 겪었지만, 개도국은 치료제와 진단 도구 등의 수급에서 배제되거나 감당하지 못해 피해가 더 컸다.
당시 개도국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형평성과 연대감 결여’라는 완곡한 언어로 대충 넘길 사안이 아니다. 팬데믹이 발생한 개도국에서 병원체 물질이나 정보를 WHO와 선진국에 신속히 알려주지 않으면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의 반란’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WHO의 최대 후원국 역할을 해오던 미국이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WHO 탈퇴 문서에 서명했다. 단순히 한 회원국의 이탈 차원을 넘는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인류 차원의 장벽에 핵심 주춧돌이 빠진 것 같은 충격이다. 모더나 등 미국계 거대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국제적 역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칫 국가별로 각자도생해야 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같은 제2의 팬데믹에 대한 예방과 대처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권한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치명타였던 코로나19에서 보듯 팬데믹은 피해 규모나 성격상 단순히 보건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영국은 각각 2022년과 2023년에 ‘바이오 안보전략과 실행계획’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 미국은 많은 경우 대통령실 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국무부·보건부·농림부·환경청 등 거의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이 지원한다.
한국도 지난 정부에서 미국·영국 등 바이오 선진국과 팬데믹에 공동 대처하고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통령실 차원에서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국가 바이오 전략도 마련했고, 국가바이오위원회도 설립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실장이 교체되고, 비서실이 득세함에 따라 국가바이오위원회의 목적과 구성은 바이오 안보가 아닌 바이오산업 성장으로 과도하게 경도됐다.
물론 바이오산업은 거의 모든 정부에서 국정과제로 선정될 정도로 중요한 국가의 미래 핵심 성장동력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제2의 팬데믹을 경고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 요소가 경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바이오위원회 구성도 문제다. 당연직 위원 구성에 외교부·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빠져 있어 우려스럽다. 코로나19처럼 인간과 동물 모두가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은 대부분 야생동물의 무분별한 섭취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야생 동물의 서식처를 관리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질병 예방 차원에서 1차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미국·영국의 팬데믹 대응 전략과 실행계획에도 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
팬데믹은 용어에서 드러나듯 전 세계를 강타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국가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외교부의 전문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국가바이오위원회를 보면 외교부 장관은 원칙적으로 참석이 불가능하다. 위원회의 민간위원 구성에도 바이오 안보 시각을 가진 위원은 한 명도 없다. “돈 많고 여유 있는 병원장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자조가 들린다. 이렇게 방심하면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재앙에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경고를 흘려 듣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