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3월 30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스탈린과 김일성, 그리고 박헌영의 만남은 한국전쟁의 원인과 발발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북한의 남침 3개월 전에 이루어진 이 만남의 대화록은 구소련 문서를 이용한 한국전쟁 연구자였던 웨더스비가 이용한 바 있다.
소련의 ‘미군 불개입’ 관측과 박헌영의 ‘남한 봉기’ 오판, 한국전 불러
① 국방·경제력 ② 국제 정세 ③ 자국 여론에 대한 평가가 전쟁 결정 근거
독·일은 상대 과소 평가, 미국은 이라크전 빨리 끝내 반전 여론 피해
미국, 폭격 초기에 이란 내부 변화 기대한 정황…오판에 따른 전쟁 가능성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부가 기록한 이 대화록에 의하면 스탈린은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북한의 전쟁 전략에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된다고 봤다. 스탈린은 남침을 최종 결정하기 전에 중국의 전쟁 지원에 대한 보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소련이 직접적으로 참전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다.
1949년과는 달리 북한의 남침 전략에 대해 스탈린이 찬성한 또 하나의 요인은 소련의 핵개발이었다. 소련이 핵을 갖게 되면서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고 판단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이 공산화될 때에도 개입하지 않았던 미국이 한국과 같은 작은 지역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북한의 남침 결정 이에 대해 김일성은 한반도 내부 상황도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답했다. “공격은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이고 전쟁은 사흘 안에 승리할 것”이며 “남한의 게릴라 운동은 더욱 강해졌고 대규모 봉기가 예상된다”고 했다. “미국은 준비할 시간이 없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모든 한국인이 새 공산주의 정부를 열렬히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더하여 부수상이었던 박헌영은 “남한에서 강력한 게릴라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20만 명의 당원이 대중 봉기의 지도자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남침했을 때 남한에서는 어떤 봉기도 없었다. 남한에 있었던 공산주의자들과 게릴라들은 1949년부터 1950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에 대부분 토벌되어 힘을 잃었다.
오판이었을까? 아니면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까? 남한에서 활동하다 1946년 월북했던 박헌영이 북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했던 것일까? 아니면 남쪽에 있던 박헌영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이 과대평가한 보고서를 북으로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그 진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잘못된 정보와 판단이 결국 3년간의 전쟁, 80여년 간의 분단이라는 큰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오판인가? 예방전쟁인가? 전쟁은 오판에 의해 일어난다. 인간은 전쟁을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고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비용보다 이익이 더 컸던 전쟁은 없다. 인간이 갖는 가치를 고려한다면, 아무리 큰 이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인간 목숨의 가치보다 더 클 수 없다.
따라서 전쟁은 대체로 민주적이지 않은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다. 전체주의적 지도자들은 사회적 여론의 조작을 통해 한 국가 전체를 전쟁으로 몰고 간다.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때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지도자들에 의해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미래의 전쟁으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전쟁이나 군사전략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를 예방전쟁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군사시설에 선제공격을 한다. 미래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예방전쟁은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전쟁 개시 결정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이렇게 전쟁은 어떠한 이익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세 가지 조건에 대한 평가에 근거해 전쟁이 결정되었다. 첫째로 내가 상대방보다 더 월등한 국방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는 전쟁 개전의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주관적이고 부정확하다. 독일의 소련 침공, 일본의 진주만 습격, 유엔군의 평양 이북으로의 북진 등이 그 사례이다.
독일은 소련군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일본은 진주만의 미 해군을 파괴하면 최소한 2년간 복구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유엔군은 중국군의 능력과 전술을 잘못 판단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일본의 오판이다. 일본은 미국의 생산력과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치명적 패배였다.
둘째로 국제적 상황에 대한 고려이다. 김일성의 남침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소련의 핵개발과 중국 혁명이었다. 일본은 독일의 소련 침공과 프랑스 점령을 보면서 진주만 공격을 시작했다. 또한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갖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힘이 약해지는 과정을 보았으며, 미국이 대서양과 유럽에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판이었다.
역내 민족주의의 이용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이 초기에 동남아에서 지지를 받았던 것은 서유럽 열강들을 일본이 쫓아냈고, 아시아 사람들에 의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는 주장 때문이었다. 동남아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가 곧 밝혀졌지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독일의 나치즘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적이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후세인은 아랍 민족주의를 이용하고자 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후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 침략을 막기 위해 ‘사막의 방패 작전’을 시작하자 후세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이집트까지도 이라크를 지지하지 않았다. 아랍국가들은 별도의 아랍 연합군을 만들어 사막의 방패 작전에 참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버지 부시 정부의 걸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국제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대항이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영국·독일·프랑스가 걸프전에는 참전했다. 쿠웨이트를 해방하기 위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지상군의 투입은 100시간만에 끝났다.
상대방 국가의 내부 상황 셋째로 자국과 상대방 국가 내부의 사회적 여론이다. 내부의 강력한 지지 없이 국가의 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전쟁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내부의 여론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많은 선전전이 모두 이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방 국가의 여론도 중요하다.
예방전쟁이라는 목표 하에 전쟁으로 미래의 위험이 되는 상대방 국가의 정권을 교체하려 한다면, 상대방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여론을 보아야 한다. 외부의 공격과 동시에 내부의 폭동이 있다면 목표는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상대방 국가의 거버넌스 상태와 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거버넌스가 탄탄하면 반대여론이 있어도 정권교체가 안 될 수 있고, 거버넌스가 약하면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전쟁의 경우 남한의 정세에 대한 김일성과 박헌영의 완전히 잘못된 판단을 볼 수 있다. 남침 후 3일이면 남한 내부의 봉기에 의해 남한 정부가 스스로 몰락할 것으로 보았다. 반면 걸프전은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한 경우였다. 이라크 내 여론이 후세인 정부를 교체하기에 충분한가에 대해서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기에 4일 만에 지상군의 전쟁은 끝났다.
비록 후세인 정부의 교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불완전하게나마 국제사회의 이라크 군사시설에 대한 감시가 가능했고, 전쟁을 단기간에 끝냄으로 인해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형성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내부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오판,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내부의 단합이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이란 내부 상황 판단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란에서의 전쟁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점은 이란 내부 상황에 대한 오판의 가능성이다. 베네수엘라에서의 미국의 작전 직후 이란 내에서 반정부 시위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정보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기관과 주요 정책결정자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막상 이란의 주요시설에 대한 폭격이 있었고, 지도자가 사망했음에도 내부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 미국 정부의 성명을 보면 폭격 초기 이란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길 기다렸던 것 같다. 변화의 소식이 없자 쿠르드 민병대가 이란을 공격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이란에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분명 초기 상황은 잘못된 정보와 판단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자칫 제2의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이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의 초입에 진입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길어지는 전쟁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울 가능성도 크며 더 많은 민간인 피해와 함께 인류에 치명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