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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가인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사법 3법

중앙일보

2026.03.0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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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사법 3법’이 확정됐다. 국회의 입법으로 처리되었지만 사실 이는 1948년 이후 유지되어 온 우리나라 헌정 구조의 근본적 재편을 의미한다. 형식적으로는 법률 개정이지만 내용상으로는 헌법 개정에 가까운 중대한 변화라는 말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충분한 사회적 공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여야 간 협의도 없이, 더욱이 당사자인 사법부의 의견도 무시한 채 이뤄졌다. 많은 부작용과 문제의 발생이 불가피할 것이다.

개헌에 가까운 중대 변화임에도
사회적 공론·여야 협의 없이 확정
대한민국 출발 때부터 강조해 온
사법부 독립성에 심각한 위기

법원에서 확정판결한 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도록 한 재판소원 도입법은 기존의 3심제를 사실상 4심제로 바꾼 것이다. 1948년 이후의 사법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된 것인데, 이는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한다는 헌법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로서는 업무량도 폭주하겠지만,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나 정치인 혹은 권력과 관련된 사건을 최종적으로 다루면서 법원과 다른 판결을 내리게 될 때의 정치적 부담도 갖게 됐다.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됐다는 권위보다 정치적, 정파적 관점에서 헌재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질 것이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3년 동안 모두 26명으로 늘린다는 대법관 증원법에 대해서는 작년 9월 이 칼럼을 통해 이미 그 방안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를 ‘우리 편으로 만들기’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핵심 법원의 구성을 정파적으로 유리하게 바꾸기 위해 판사의 정원을 늘리고 그 만큼을 자기편으로 임명하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은 헝가리, 폴란드, 베네수엘라 등 민주주의가 퇴행한 국가에서 나타났던 방식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2004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대법원 규모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렸고 이후 9년 동안 대법원은 정부에 반대하는 판결을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지적했다. 우리는 과연 다를까.

이른바 ‘법 왜곡죄’는 더 해괴하다. 우리의 통치 시스템은 국회가 법을 제정하면,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고, 법원은 그 법을 해석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법 왜곡죄는 법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판사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법의 해석에 대해 다시 해석하는 외부자가 생겨난 것이다. 물론 판사가 법 해석을 잘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사법 시스템은 한 번의 재판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다시 다루고 또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그 해석의 옳고 그름을 살펴보도록 했다. 이제는 누구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졌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법을 왜곡해서 해석한 판사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다. 사법 시스템의 전반적인 안정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사법 3법이 통과되면서 민주당은 ‘제왕적’으로 불려 온 대통령에, 야당이 ‘입법독재’라고 비판해 온 입법권에 더해 사법부까지 사실상 그들의 영향력 하에 두게 되었다. 지금 여론의 추이대로라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싹쓸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민주당 천하’로 완성될 것이다. 민주화 이후 경험해 보지 못한 권력의 집중이다.

민주당이 이 무리한 조치를 강행할 수 있었던 건 눈치를 살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쟁 세력이 높은 지지를 받는 상황이었다면 명분 없는 사안을 다수의 힘만으로 밀어붙이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오늘날 국민의힘은 권력과 다투는 것이 아니라 유령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과 그릇된 확증편향으로 부정선거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고, 나라도 망치고 보수 정치도 망친 윤석열이라는 또 다른 유령과도 싸우고 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이 유령과 싸우고 있는 정당에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균형이 무너졌다. 정파 간 균형도, 제도 간 균형도 모두 무너졌다. 사람의 몸이 그렇듯 나라 역시 균형이 무너지면 건강을 잃게 된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는 1948년 8월 16일 국회를 방문하여 인사말을 했다. “여러분 국회의원은 온 국민을 대표하고 국회의원 여러분은 이 시기에 적당하게 법관으로 하여금 마땅히 이것을 적용할 만한 법률을 제정해 주시면 거기에 우리는 의준(依準)해서 일반 국민의 공복으로 그것을 공정하게 운영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 아니 할 것을 결심하고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 사법기관은 법관에 운영에 관한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정한 독립성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다른 방면에 간접이나 직접으로 강제를 받는다든지 어떠한 정신이 거기에 첨부된다고 할 것 같으면 아무리 수신(修身)을 갖고 나간다 하더라도 거기에 지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가인의 당부와 달리, 이제 법관은 ‘다른 방법에 간접이나 직접으로 강제를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때부터 강조되어 온 사법부의 독립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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