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4차 오일쇼크 공포 덮쳤다

중앙일보

2026.03.09 08:29 2026.03.09 08:5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국제유가가 장중 한때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하며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중동 사태 여파로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 시장에선 4차 오일쇼크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9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은 오후 4시 기준 배럴당 104.01달러에 거래됐다. 이날 98달러에 거래를 시작해 장중 한때 전 거래일 대비 31.3% 급등한 119.43달러까지 치솟았다. WTI 값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장중 119달러를 찍었다.

충격은 국내 금융시장으로도 번졌다. 이날 코스피는 5.96% 하락하며 5251.87로 밀렸다. 원·달러 환율은 이날 주간 거래에서 19.1원 오르며 1495.5원을 찍었다. 1500원에 다가섰는데,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다. 유가 파동 위험에 정부는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에 이어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추경과 관련해 “추가 대응이 필요하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다. 전 세계 해상 원유·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 요충지다. 사태 이후 유조선 통행량은 일주일 만에 약 90% 감소했다. 해협 봉쇄로 원유 수출이 막히자 일부 산유국은 감산에 들어갔다.



“물가상승 압력 커져, 연준 임시회의 가능성”

이라크 남부 주요 유전 생산량은 하루 약 130만 배럴로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쿠웨이트는 아예 석유 공급 계약을 지킬 수 없다는 내용의 ‘불가항력 조항’을 선언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과거 1~3차 오일쇼크와 비슷한 구도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1973년 중동전쟁 이후 석유수출국기구(OPEC) 금수 조치로 촉발된 1차, 1979년 이란 혁명에 따른 2차,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생한 3차 오일쇼크 모두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원유 공급을 흔든 사건이었다.

이번 위기는 석유뿐 아니라 가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복합적이다. 주요 중동 국가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의 대부분을 호르무즈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LNG 채굴 부산물인 헬륨 공급 차질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유가 상승 속도는 과거 오일쇼크 당시보다 빠르다”며 “유가는 거의 모든 산업의 기초 원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물가 전반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 내부에서도 경기가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 투자은행의 레이먼드 제임스는 “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정책과 관련한 임시 회의를 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이란 핵 위협이 제거되면 유가는 빠르게 하락할 것”이라며 “미국과 세계의 안전을 위한 작은 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유가 전망을 서둘러 고쳐 쓰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원유 공급이 장기간 위축될 경우 가격이 사상 최고치(배럴당 147달러)에 근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원([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