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무력 충돌 양상이 민간의 생명선인 해수 담수화 시설을 겨누는 타격전으로 번지고 있다. 이를 두고 “석유가 아닌 물이 가장 위태로운 자원이 됐다”(AP통신)는 분석이 나온다.
8일(현지시간) 바레인 정부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해수 담수화 시설 1곳이 손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 나라는 지하수를 공급하는 수원이 고갈된 탓에 담수화 공장 100여 곳에 식수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담수화 시설 타격은 단순한 물적 피해를 넘어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란은 자국 담수화 시설이 먼저 공격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7일 바레인의 미 공군기지에서 시작된 공격이 호르무즈해협 인근 케슘섬의 담수화 시설을 타격해 30여 개 마을의 물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미국 중부사령부는 케슘섬 인프라 타격에 미군이 관여한 바 없다고 이란의 주장을 일축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역시 담수화 사태에 휘말렸다. 예루살렘포스트 등 이스라엘 매체는 “UAE가 8일 이란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공격했다”며 “걸프 국가 최초의 보복 공세”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UAE 정부는 해당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해수 담수화 시설은 바닷물에서 염분과 불순물을 걸러 식수·생활용수·공업용수로 바꾸는 설비다. 물이 부족한 이 지역에선 매우 중요한 인프라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카타르와 바레인은 사실상 식수와 생활용수 전량을 담수화에 의존한다. 쿠웨이트는 약 90%, 오만은 약 86%, UAE와 이스라엘은 각각 약 80%,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70%를 담수화에 기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 지역이 전 세계 해수 담수화 역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담수화 시설 약 5000곳이 중동 지역의 상수도 시스템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주로 걸프 해안에 위치한 담수화 시설들이 중앙집중화된 거대 설비란 점이다. 단 한 번의 정밀 타격만으로도 대도시 전체의 식수 공급망이 마비될 수 있다. 핵심 담수화 시설 몇 곳만 골라 타격해 내부의 혼란을 유발하는 전략이, 분산돼 있는 여러 군사기지를 때리는 것보다 더 위협적인 카드라는 얘기다.
관련 인프라가 전력·정유 시설과 가깝다는 점도 문제다. 담수화는 높은 압력을 가해 특정 성분을 특수 분리막으로 걸러내는 역삼투압 방식과 고온으로 가열시켜 수증기를 다시 모으는 증발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어느 방식이든 상당한 전력이 소요돼 대형 발전소 옆에 건설된다. 인근에는 주로 정유 시설이 자리 잡는다. 원유 정제에도 물이 필요해서다. 공격을 받게 되면 에너지 생산망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마이클 크리스토퍼 로 유타대학교 중동센터 소장은 AP통신에 “(담수화 시설은) 20세기의 기념비적 업적인 동시에 일종의 취약점”이라고 말했다.
담수화에 쓰일 해수의 오염 가능성도 안보 위협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유일한 상업용 원전인 남부 해안의 부셰르 원전이 공격받을 경우를 최악의 시나리오로 지목했다. 방사성 등 오염물질이 지형상 폐쇄적인 걸프 해역으로 퍼져 바닷물이 오염되면 정수 가동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담수화 시설
바닷물에서 염분과 불순물을 걸러 식수·생활 용수 등으로 바꾸는 설비다. 담수화 과정에서 상당한 전력이 소요되는 데다 대형 펌프, 취수·배출관, 저장 설비도 필요한 만큼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발전소와 함께 복합단지 형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