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단독] "탈출하고 싶어요" 팬 한마디에 중동 53명 구출한 유튜버

중앙일보

2026.03.09 13:00 2026.03.09 17:2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구독자 61만명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재천(26)씨는 지난달 28일 한 팬으로부터 “아랍에미리트(UAE)에 있는데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에 대한 이란의 보복으로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된 시점이었다. 당시 육로로 UAE를 빠져나와 오만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20대 여성이었던 팬은 홀로 국경을 넘는 것에 심한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UAE에서 18차례에 걸쳐 53명의 탈출을 도운 이재천(26)씨. 사진 독자
‘여러 명이 모이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이씨는 그날로 ‘UAE 탈출방’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밤새 탈출을 희망하는 인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시에 현지 여행사도 섭외했다. UAE에 체류한 경력이 있는 스태프와 함께 전쟁 속보 등을 주로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쌓은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믿을 만한 탈출 경로를 재빠르게 마련할 수 있었다.


중동 현지에서 가이드를 하던 여행사들의 도움도 컸다. 이씨는 “팬 한 분이 무사히 탈출하고 나니 한인회 등에서 소문이 나며 도와달라는 연락이 늘기 시작했다”며 “여행사를 통해 자동차를 확보했는데, 처음엔 승용차를 이용하다가 사람이 늘면서 전세버스까지 동원했다”고 했다.


두바이 공항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연합뉴스
모든 과정이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이씨와 협력해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택시와 버스 등을 제공한 허상준(60) 캐롯투어 대표는 “탈출한 사람들을 오만과 사우디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차량과 기사에 대한 수요가 폭증해 요금이 급격히 치솟았다”며 “심지어는 섭외해 둔 기사들이 더 높은 요금을 부르는 쪽으로 이탈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는 “150만원 정도 하던 택시비가 며칠 만에 200만원으로 급격하게 올랐다”며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려 사람을 많이 모아 나눠 내게 해 간신히 해결했다”고 했다.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하던 찰나 탈출을 원하는 사람이 늘자 탈출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만 국경에는 도착했지만 와야 할 택시가 오지 않아 3시간 동안 기다린 경우도 있었고, 국경 검문소 직원들이 금품을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건넨 경우도 있었다. 일부 탈출자는 오만에 도착한 뒤 유심을 구하지 못해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다른 경로를 통해 탈출한 사람들 중 일부가 택시기사와 말다툼 끝에 사막에 버려졌다는 루머도 퍼졌다.


이씨가 마련한 버스를 타고 UAE에서 탈출하고 있는 사람들. 사진 독자
이에 이씨는 아예 버스를 동원해 사람들을 안전하게 옮기기로 결심했고, 결국 총 18차례에 걸쳐 53명을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먼저 탈출하신 분들이 나중에 이동하는 분들에게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선순환도 만들어졌다”고 했다.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어려운 점도 많았다고 한다. ‘여행사로부터 돈 받고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특히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탈출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사나 택시 업체 등을 직접 연결시켜줬기에 따로 돈을 받거나 한 일은 없다”며 “(유튜브에 업로드한) 영상에 의혹이 많이 제기됐는데, 하나하나 해명하고 납득시켰고, 옳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9일 새벽 아랍에미리트(UAE)에 발이 묶여 있던 한 한국인이 정부가 마련한 첫 전세기를 타고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가족과 재회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부가 전세기를 마련하고, 외교부 직원들로 구성된 대응팀을 파견하는 등 본격적인 대피책 마련에 나선 만큼, 이씨는 현재는 탈출을 돕는 일을 잠시 중단한 상태다. 오히려 혼란이 생길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관심은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중동 지역에 탈출을 원하는 한국인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여전히 탈출 정보 등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등에서 공유하고 있다”며 “팀원 모두가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며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안전한 대피를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김창용([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