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나 갱생의 씨앗이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던 법의 아량이 자취를 감출 상황에 처했다. 법에 규정된 곧이곧대로 엄벌에 처하지 않으면 법왜곡죄로 판사와 검사, 경찰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24년 11월 경찰에서 구속 상태로 송치된 60대 노숙인 김모씨를 풀어줬다. 김씨는 20여 년 전 사업 실패 후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관악산에 텐트를 치고 노숙 생활을 했다. 실종신고가 됐고, 2024년까지 12년간 사망자로 간주됐다. 주민등록이 없는 무명(無名)의 그는 주민센터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고, 굶주림 끝에 서울대 연구실에 침입했다가 붙잡혀 구속됐다. 김씨가 서울대에 침입한 건 8년간 9차례. 휴대전화나 노트북, 실험기구 등은 건드리지 않고 현금과 상품권만 가져갔다.
검찰은 김씨가 장기간 생활고를 겪어온 점, 피해자인 서울대 교수 등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구속을 취소하고 실종선고 취소를 청구했다. 김씨가 “사회로 복귀해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하자, 검찰은 취업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기소유예는 죄가 되지만 범행 동기나 피의자의 사정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이다. 그는 “저에게 새 삶터를 마련해 주시고 재활을 위해 힘써준 검사님 이하 수사관님들께 자부심을 드리고 싶다. 우리가 애써준 사람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그런 자부심이 들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온전히 사회로 복귀한 김씨는 어느 날 검사실에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곳에 내려온 지 1년여가 됐다. 여기 오기 전 검사님께 서약한 대로 믿음과 기회를 저버리지 않고 바르고 열심히 살았다”며 “모든 서류와 자격을 갖추고 정상인으로 살고 있어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는 김씨 같은 경우라고 해도 기소유예 처분이 어렵게 된다. 피해자가 법왜곡죄로 고소·고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노동자가 사무실의 450원짜리 초코파이를 먹었다고 재판에 넘겨진 ‘초코파이 절도’가 대표적이다. 당시 사업체의 고소와 엄벌 촉구로 기소까지 이어졌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법왜곡죄로 처벌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고소당해 수사와 해명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경찰의 경우 정식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하는 입건유예 처분에 부담이 커졌다.
김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사기관의 재량권이 극도로 축소돼 어떤 사연이 있든 죄가 된다고 하면 전부 재판에 넘기지 않겠느냐”며 “사회에서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