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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사 견제하는 법왜곡죄, 근심 커진 성폭력 피해자들 [사법체계 대격변]

중앙일보

2026.03.09 13:00 2026.03.0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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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임시국회국회 본회의에서 법왜곡죄 내용이 담긴 형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뉴스1

성폭력 피해자 A씨(29)는 법왜곡죄가 시행된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쳤다. 가해자가 직장 선배였다. 업계가 좁아 알려지면 불이익을 당할 게 예상됐다. 그럼에도 A씨는 고민 끝에 가해자를 고소했다. 경찰은 범죄를 인정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여당의 ‘검찰개혁’으로 사건 처리가 지연된다는 보도가 쏟아질 때였다. A씨는 오죽하면 “수사를 빨리 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번엔 판사와 검사들을 가해자가 괴롭힐 수 있는 법왜곡죄가 통과됐다는 기사를 접했다. A씨는 “가해자가 법왜곡죄를 악용할까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법왜곡죄는 형사 사건의 판사와 검사, 경찰 등이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함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거나, 적용돼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 경우’에 처벌한다. “존재 자체가 법 왜곡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역할을 할 것”(임지봉 서강대 로스쿨 교수)이라는 찬성 의견이 있다. 허위 자백을 강요해 무고한 청소년을 범인으로 몰아넣은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등 형사 사법의 어두운 그림자 역시 도입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A씨처럼 법왜곡죄는 성폭력·아동학대 사건 등 범죄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부작용이 있다. “가해자가 판사와 검사를 법왜곡죄로 고소·고발해 적극적 수사를 위축시킬 것”(재경지검 부장검사)이란 우려에서다. 형사 체계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진 기자

법왜곡죄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악용될 분야로 꼽히는 분야는 정치 사건이다. 진보 진영의 한 변호사는 지난달 유튜브에서 김건희 여사 사건 재판장이었던 우인성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법왜곡죄 1호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형량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보수 진영 역시 손 놓고 있지는 않다. 내란 유죄를 선고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변호인은 지난달 유튜브에서 “법왜곡죄 입법이 되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을 뒤집어씌운 자들을 전부 다 법왜곡죄로 처벌하면 된다”며 “이 법을 그대로 적용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법왜곡죄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 불복의 창구를 터준 꼴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도 판사들이 형사 사건을 맡기를 꺼려 하는데, 법왜곡죄로 형사 사건 기피가 더 심해질 것”(재경지법 부장판사)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왜곡죄로 검사를 괴롭히는 방법도 있다. 국가공무원법상 20년 이상 재직하고 정년 퇴직일로부터 최소 1년 전 스스로 퇴직한 검사는 명예퇴직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공무원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췄다 해도 고소·고발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경우에는 명예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명예퇴직 신청을 엄두도 못 내고 의원면직을 신청하는 검사들이 허다하다.

차준홍 기자

반면에 이런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노수환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피고인이 곧바로 판사를 고소·고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설령 무차별적 고발이 있더라도 수사기관이 초기 단계에서 각하하는 방식으로 걸러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오히려 극소수의 고의적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가훈’ 같은 규정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도 “초기 입법 과정에서는 명확성 원칙 위반 등 여러 우려가 제기됐지만 최종 통과된 법안을 보면 상당 부분 보완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며 “국민 입장에서는 불리할 것이 없고, 수사기관에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법왜곡죄가 ‘판례 변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판사들은 기존 대법원 판례가 더는 국민 전반의 인식이나 사회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 대법원 판단을 깨는 새로운 판결을 내리곤 한다. 하급심에서 이런 판단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그 압박은 대법원으로 향하고, 대법원 역시 기존과는 다른 법리 해석의 결과를 적용하는 판례 변경을 한다.

대법원이 2018년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 거부를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로 인정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 선포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2022년 판례가 대표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사법 3법 관련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법왜곡죄에 관해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사를 기소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밝혔다. 뉴스1

법왜곡죄 기준이 분명치 않아 “판사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재판에 임할 수밖에 없다”(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경고도 나온다. 사회 변화상에 발맞춰 기존 판례를 뒤집는 소신 판결마저 의도적 법 왜곡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법왜곡죄가 사법부의 경직성을 강화한다는 얘기다. 윤진수 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는 “지금도 수사나 재판을 받고 마음에 안 들면 고소·고발을 하는데, 그런 현상이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소신에 따른 재판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최서인.석경민.김성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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