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내기 전 술을 마셨다고 시인한 배우 이재룡(62)씨가 조사를 받기 위해 10일 오후 경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조사를 통해 경찰이 사고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밝혀내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강남경찰서에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했다. 이씨는 출석 전날인 지난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다. 심려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추가로 술을 마셔 음주 측정을 어렵게 했다는 이른바 ‘술 타기’ 의혹에 대해선 “사고를 냈는지 모르고 예정돼 있던 약속에 참여했을 뿐, 음주측정을 방해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에서 술을 마신 상태로 차를 몰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달아난 혐의를 받는다. 사고 이후 이씨는 지인 집에서 추가로 술을 마시다가 자정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측정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0.03%~0.08%)이었다. 약물 간이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경찰은 이씨가 섭취한 알코올의 양과 체중·성별 등을 토대로 ‘위드마크(Widmark) 공식’을 활용해 사고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를 추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추가 음주 이후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결과가 면허정지 수준에서도 낮은 수치에 해당했다면, 추정 혈중알코올농도가 음주운전 처벌 기준(0.03%)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단 분석이 나온다. 김상운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량 등을 공식에 넣어서 사후에 추정하는 기법이지만, 추가 음주를 얼마나 했는지 등을 폐쇄회로(CC)TV로 입증하지 못하면 전적으로 피의자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처벌 기준보다 낮은 수치가 나와 음주운전으론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재판에서도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추정 혈중알코올농도가 처벌 기준에 못 미쳐 음주운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23년 술을 마시고 화물차를 몰다 사고를 낸 뒤 소주 1병을 추가로 마신 운전자의 음주운전 혐의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가장 유리한 것을 대입하여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하여 운전 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것”을 재판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하며 무죄를 선고한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당시 경찰이 체포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9%였는데, 법원이 위드마크 공식에 따라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 추정한 결과 0.028%로 처벌 기준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추정치 자체가 재판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방송인 이창명(57)씨는 2017년 술을 마신 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삼거리 교차로를 지나다 교통신호기를 들이받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됐다. 9시간 만에 경찰에 출석한 이씨가 음주운전 사실을 부인하자, 당시 검찰은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사고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정지 수준인 0.05%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인이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는 합리적 의심은 들지만, 술의 양이나 음주 속도 등이 측정되지 않아 위드마크 공식에 따라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 상태에서 운전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6월 ‘술 타기’를 음주측정 방해행위로 처벌하는 ‘김호중 방지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현장에선 법 적용이 어렵단 목소리도 나온다. 수사기관이 피의자가 음주측정을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추가음주를 했는지 그 의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명예교수는 “이른바 술 타기 수법의 의도를 입증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며 “사고 후 도주할 경우 더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등 술 타기 수법을 근본적으로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