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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공동 저자?...서울국제도서전이 던진 질문

중앙일보

2026.03.10 02:00 2026.03.10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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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올해의 주제는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다. 사진 서울국제도서전
"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에게 다가간 최초의 인간 이후로, 인간은 그 불로 무언가를 만들어왔다. AI라는 불도 다르지 않다. 문제는 불이 아니라, 이 불로 어떤 질문을 벼려내느냐다. "

오는 6월 열리는 ‘2026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문 중 일부다. 도서전 측은 지난 7일 주제 ‘인간선언 호모 두두리(Homo duduri)’와 이 주제문을 함께 공개했다. 한국의 옛 문헌에 등장하는 신화적 존재 ‘두두리’를 떠올리며, 불 앞에 도망치지 않은 두두리처럼 AI(인공지능)에 질문을 던지자는 내용이 담겼다.

독자들이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주제문의 작성자다. 주제문 하단엔 소설가 김연수와 ‘클로드 소네트 4.6’ ‘제미나이 3’가 공동작성자로 명시돼 있다. 인간과 AI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나란히 한 것이다. 페이스북·X(옛 트위터) 등 SNS에 올라온 독자 반응 중엔 “주제에 맞다, 여는 글로 적절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도서전 서문을 AI에 맡기다니…” “당황스럽다” 등 부정적 반응이 훨씬 많았다.

‘클로드 소네트’는 미국의 스타트업 앤트로픽이 개발한 대형 언어 모델(LLM) AI다. 계약서·연구 논문 등 문맥에 따라 글을 분석하고 작성하는 데에 뛰어난 성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글이 개발한 AI ‘제미나이’ 역시 긴 문장을 분석하고 추론하는 데에 특화된 모델로 여겨진다.

2026 서울국제도서전 주제문 전문. 사진 서울국제도서전 홈페이지 캡처
서울국제도서전 기획 담당자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10주년이자, 출판계의 AI 활용이 화두가 된 2026년의 도서전 주제로 ‘호모 두두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시엔 (인간과 AI가) 대결 구도였다면 지금은 공존 관계로 재편됐고, AI를 어떻게 다루며 살아갈지 ‘질문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조어(造語)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문은 평소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김연수 작가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 나오는 10개의 고전을 AI에 학습시키고 질문을 나누며 작성했다. 담당자는 “AI라는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려면 AI와 함께 작성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며 “김연수 작가 역시 AI와의 주제문 작성 과정을 기록해서 공개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도서전은 특별도서 ‘리미티드 에디션’을 통해 이 과정을 밝힐 예정이다.

현행법상 인간 작가가 웹이나 단행본에 발표한 글에 AI 활용 여부를 표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지난 1월 22일부터 시행 중인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AI 기본법)을 따져봐도 그렇다.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자문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용해 변호사는 “현행 ‘AI 기본법’의 대상을 출판물까지 확대하여 해석하긴 어렵다”며 “인간 작가가 AI를 활용해서 글을 썼을 때, AI 활용 여부를 표기하는 건 작가의 양심에 달린 ‘법 공백’ 상황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한 출판사 대표는 “기술의 속도에 법과 사회적 논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작가들의 AI 활용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출판사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AI를 통해 정보를 검색했다’ ‘기획과정에 AI의 도움을 받았다’는 등 AI 활용 여부를 표기할 수 있도록 공통의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전 기획 담당자는 “출판계에서 첨예한 주제인만큼, 도서전에서 열릴 강의와 전시 등을 통해 논의의 장을 열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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