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이 시행되자마자 산업 현장 곳곳에서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의 교섭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범위’가 동시에 넓어지면서 현장의 불확실성이 크게 커졌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노사 관계가 연중 내내 분쟁 국면에 놓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10일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자 양대노총의 하청 노동조합은 일제히 원청에 공문을 보내며 교섭 요구에 나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날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포스코 하청사 노조 34곳 대리), 전국택배산업노동조합이 각 포스코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 단체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앞서 900여개 사업장에서 14만명 규모의 조합원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은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법원이 파업 참가 노동자에게 약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하자, 4만7000여 명의 시민들이 연대의 뜻으로 4만7000원씩 성금을 모아 노란 봉투에 담아 전달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 노란봉투법의 내용은 단순한 손해배상 제한을 넘어 크게 확대됐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직접 교섭과 노동쟁의를 할 수 있도록 했고, 노동쟁의 대상 역시 기존보다 넓어져 ‘경영상의 결정’까지 포함하도록 범위가 늘었다.
① 어디 하청 어떤 의제까지 응해야 하나
당장 첫날 원청은 수십개의 하청 노조로부터 동시에 교섭 요구를 받았지만 어디까지 교섭에 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용자성 판단이 사례마다 엇갈려 기업의 불확실성이 크다. 예컨대 2021년 CJ대한통운 택배기사 노조 사건에서는 배송 방식과 운영 전반에 대한 회사의 영향력을 근거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반면 2019년 금속노조가 현대·기아차 등 9개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낸 교섭 쟁의조정 에서는 사용자여부가 분명치 않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노동부가 ‘사용자 판단위원회’로 지원에 나서겠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이광선 율촌 변호사는 “최소 수개월은 필요한 복잡한 사안인데 최대 20일의 짧은 심의 기간 안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설령 결론이 나오더라도 노사 모두가 불복해 결국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분쟁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리후생, 임금 등 교섭 의제별로 사용자성을 따로 판단하도록 한 점도 또 다른 분쟁 요인으로 지목된다. 김상민 태평양 인사노무그룹장은 “사용자로 인정돼 교섭 테이블에 앉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모호하거나 없어 보이는 안건이 하나라도 포함되면 다시 분쟁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②"구조조정 예상되니" 교섭하자 당장 공장 이전이나 생산라인 축소 같은 사업 재편도 분쟁 대상이 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이 기존에 교섭 대상이 아니었던 ‘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시킨 데다, 노동부 매뉴얼도 구조조정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 실제 실행 전이라도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해 현장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현대모비스 자회사 노동조합은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부터 ‘램프 사업 매각 불가’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구조조정이 예상된다”며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라고 선을 그어야 했는데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분쟁 가능성을 키웠다”며 "노조는 이를 근거로 모든 분할·합병·매각에 당연히 일단 교섭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기차 전환이 진행 중인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압박이 큰 석유화학 업종, 조직 개편이 잦은 게임업계 등을 중심으로 노사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③ 분쟁 상시 노출, 손해배상은 제한 앞으로 기업이 연중 내내 노동쟁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광선 변호사는 “과거에는 단체협약이 체결되면 사실상 추가 쟁의가 어려웠다”며 “노란봉투법으로 사업 경영상의 결정과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까지 노동쟁의 대상에 포함되면서 노조가 상시적으로 노동쟁의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사용자가 노조에 비해 대응 수단이 줄었다는 점도 경영계의 우려 사항이다. 개정법은 노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 사용자 측 대응 여력을 줄였다. 박삼근 화우 변호사는 "사실상 손해배상이 크게 제한된 만큼 노조측에서는 보다 강경하게 파업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정부는 노사간의 '대화와 타협'을 말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노노 갈등’과 ‘노사 갈등’이 맞물리며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지순 교수는 “하청 노조가 다양한 요구를 내세우며 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원청 노조 역시 자신들의 몫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한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하청 노조와 원청 노조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갈등이 더 커지고, 결국 노사관계 전반이 더 큰 분쟁으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