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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휘브리스를 경계하라

중앙일보

2026.03.1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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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극작가·연출가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다. 기원전의 고대 그리스 비극 중 ‘페르시아인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2의 배우를 도입하며 연극의 기본 틀을 만들었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으로, 문명의 승패를 좌우했던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다.

그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고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과 문명을 지배했다. 만약 그때 페르시아가 승리했다면 인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 아이스퀼로스는 마라톤과 살라미스 해전에 직접 군인으로 참여했던 사람이다. 덕분에 살라미스 해전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어 ‘페르시아인들’은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그리스가 군함의 선수에 장착한 놋쇠 충각(衝角)을 사용해 수적으로 월등하지만 움직임이 느린 페르시아제국의 함대를 격파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해준다. 지금으로 치면 드론처럼 가격은 싸지만 날렵한 신형무기를 사용한 전술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는 승리자의 오만에 도취하지 않았다. 당대 그리스인들은 절제와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교만(휘브리스)을 경계하거나 판단의 착오(하마르티아)로 생긴 파국조차 책임지려고 했다.

아이스퀼로스는 특히 휘브리스에 예민한 작가였다. 절제력을 상실한 영웅의 교만이 어떤 파국에 도달하는지 피와 광기의 역사를 반추하곤 했다. ‘페르시아인들’ 역시 그런 작품이다. 패배한 ‘페르시아인들’의 탄식에 초점을 맞추었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다리까지 놓으며 신과 자연의 질서를 해칠 정도로 전쟁에 열광했던 군주의 교만을 성찰하였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다시 중동이 불타오른다. 도시에 검은 비가 내리고 집속탄이 터지는 이 무지막지한 전쟁에 과연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휘브리스를 경계하는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하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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