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동산 규제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장면이 있다. 2020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 2법을 강행 처리하던 순간이다. 야당의 강력 반대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당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안 통과 직후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다음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책 의지는 확고하며 언제든 더 강력한 추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시 불안해진 서울 전세 시장
규제 부작용에 공급 부족 심각
문 정부 정책 실패 되풀이 조짐
그 후 서울 전세 시장에선 ‘지옥’이 펼쳐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10%를 웃돌았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86년 이후 34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세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강도는 통계 수치보다 훨씬 심각했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전세 매물이 거의 자취를 감추면서 전셋집을 구경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됐다.
정치적 후폭풍도 거셌다. 임대차법 통과 약 8개월 뒤인 2021년 4월 1일 김태년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민주당이 부족했다”며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심 달래기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성난 부동산 민심은 결국 투표로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심판했다.
6년 전의 ‘악몽’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 현재 서울 주택 시장에선 전세난이 재발할 조짐이 점점 뚜렷해진다. KB부동산의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자. 지난달 서울의 전세수급지수는 166.8을 기록했다. 임대차법으로 인한 전세난이 이어졌던 2021년 9월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약 3년 전인 2023년 1월 이 지수가 45까지 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올해부터 서울 지역엔 극심한 ‘입주 가뭄’이 예고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월세도 급등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처음으로 150만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전·월세 물량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줄이는 방향에 맞춰져 있다. 대표적으로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의 대폭 확대를 꼽을 수 있다. 법적으로 토허제 지역에서 거래한 아파트는 최소한 2년간 전·월세를 주는 게 불가능하다. 토허제 대상 아파트를 사면 2년 이상 실거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실거주를 안 하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할 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정책 당국은 주택 매수자의 실거주로 전세 공급이 줄면 다른 한편으로 전세 수요도 같이 줄지 않느냐고 보는 듯하다. 예컨대 A단지에서 전세로 살던 무주택자가 B단지에서 집을 사서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B단지에선 전세 공급이 줄겠지만, A단지에선 오히려 전세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난다는 식이다. 지난달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서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의 답변이 바로 그런 얘기였다. 이날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전세 매물이 1년 전보다 32% 급감했다. 결국 전세가 실종되고 월세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고 추궁했다. 그러자 이 차관은 “(전세) 수요 측면에서 같이 빠지기 때문에 그것을 함께 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현실의 주택 시장은 초등학생의 더하기 빼기처럼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일단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고 시골에 빈집이 속출해도 주요 지역 집값은 내려가지 않고 계속 오르는 이유다. 아파트 시장 안에서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수요자들이 신축으로 쏠리고 구축은 기피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더구나 주택 시장에서 수요는 고정되지 않고 신규 유입이 꾸준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수도권에선 13만 쌍 넘는 신혼부부가 혼인신고를 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인구 유입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청년 세대의 독립으로 인한 주택 수요까지 생각하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체적으로 새집이 더 많이 필요하다.
6년 전 문재인 정부는 세입자 보호를 내세워 임대차법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전셋값과 집값의 동반 급등이란 부작용을 자초했다. 현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전세 물량 감소와 전셋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규제의 방법은 달라졌지만, 세입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규제의 역설은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