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이란 공격 ‘장대한 분노’에서 초반부터 대량의 탄약을 퍼부으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일부 등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관련 자산 이전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이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지만 관철하기 어렵다며 군사 정보를 이례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발언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한미군 자산을 중동으로 재배치하는 건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방어를 넘어 한반도 밖으로 확대되는 실질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최근 주한미군 포대나 방공무기 반출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반대 의견을 내고는 있지만, 우리 의견대로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체계의 요격 미사일 상당수를 경기 평택의 미 오산 공군기지로 이동시켰다. 앞서 이전 대상으로 확정된 패트리엇도 이날 오후 현재 아직 반출이 이뤄지진 않은 상태로, 중동으로 향할 미 방공 자산이 오산기지에 집결해 있는 것이다. 오산기지는 미 측 수송기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라 실제 반출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미 당국은 최근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발사대·요격 미사일과 기타 공격용 미사일에 대한 반출 절차를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9일(현지 시간) 익명의 정부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미 전쟁부(옛 국방부)가 한국에 배치된 사드 일부를 중동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미군은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을 인도·태평양 지역과 다른 곳에서 끌어와 이란의 드론·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방어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미군은 대이란 공습 초기 이틀간 56억달러(약 8조2600억원)어치 탄약을 퍼부으며 빠르게 재고를 소진하고 있다. 다만 “이번 조치는 중동 내 무기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예방적 차원”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2017년 9월 경북 성주에 사드 1개 포대의 배치가 완료된 뒤 사드 체계 일부가 한반도 밖으로 이동하는 건 처음이다. 통상 사드 1개 포대는 요격 미사일, 발사대, X밴드 레이더(AN/TPY-2) 등으로 구성된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 군 당국은 이중 요격 미사일을 우선 차출 대상으로 분류했다. 사드는 6기의 8연장 발사대로 구성된다. 레이더와 발사대는 현재까지는 이동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일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란의 미사일 재고가 아직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충분한 요격미사일 확보가 승패의 관건이 될 수 있는 만큼 미국이 주한미군을 포함, 전 세계 주둔 미군의 자산에 ‘총동원령’을 내리는 건 정해진 수순이라는 분석이다. 주한미군 자산이 추가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이 확장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주한미군 자산이 대북 방어가 아닌 대이란 전쟁에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 사태가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유연성 기조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 현대화를 추진하며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는 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는데, 예기치 않게 이란 사태로 인해 해당 기조가 더 확장되는 추세가 형성된 셈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유럽의 패트리엇은 우크라이나와 나토 억제에 묶여 있어 빼는 순간 파장이 크지만, 한국 내 패트리엇은 미국이 이미 전략적 유연성 틀 안에서 재배치가 가능한 자산으로 취급해 왔다”며 “이번 이동은 단순한 대 이란전 지원이 아니라, 넓게 보면 주한미군 성격을 한반도 방위군에서 인도-태평양·중동까지 연결되는 기동 예비군으로 바꾸려는 신호로 읽힌다”라고 짚었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주한미군 자산 반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하며 “주한미군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전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또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적으로’라는 표현에는 대북 방어 전념이 주한미군의 본래 역할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반대 의사를 관철할 수 없다고 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현재 양국 간 주한미군 자산 이전 절차에 대한 명문화한 규정은 없다고 한다. 외교가에서는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양국이 합의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원칙이 이번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당시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필요성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이행에 있어서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다.
이는 다분히 대만 유사시에 분쟁에 휘말릴 우려를 반영한 문안이었다. 다만 이란 사태는 동북아 지역 분쟁으로 볼 수 없어 정부가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
특히 한·미 상호방위조약 4조는 “미국이 육·해·공군을 한국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한다. 미군 배치는 미국의 권리이므로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이전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 도래할 상황의 예고편 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 측은 최근 “한국이 북한의 주요 재래식 방어에 대한 책임을 맡기로 합의했다”(지난 3일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 정책차관)고 계속 강조하는데, 전작권을 한국이 갖게 될 경우 주한미군의 규모와 역할은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를 밝혀온 이 대통령이 이날 “그(주한미군 방공자산 이전)로 인해서 우리 대북 억지 전략에 장애가 생기거나 하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전적으로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은 “우리의 국방비 부담 수준이나 방위산업 발전 정도, 국제적 군사력 순위 등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면 국가 방위에 대해 우려할 상황은 전혀 아니다”라고도 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향후 전작권 전환이 이뤄진다면 주한미군이 가진 특정 전력, 자산의 이동이나 재배치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미국이 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안보에 대한 한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어 정부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한국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면서 미 측에 주한미군과 한국군 간의 역할 분담을 통해 한반도에서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져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