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위로 가장 크고 둥근 달이 떠오르는 날 정월대보름. 지난 2일, 서울의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비채나’에 세 명의 한식 셰프가 모였다. 비채나의 전광식 총괄셰프, 소설한남의 엄태철 셰프, 그리고 레스토랑 주은(이하 주은)의 박주은 셰프다. 세 셰프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하나의 상을 함께 차렸다. “한식당끼리 협업하는 일이 흔치 않기도 하지만, 정월대보름이라는 의미 있는 날을 맞아 함께 복(福)을 나누고 싶었다”는 전광식 셰프의 제안에서 시작된 자리였다. 각자의 손끝에서 완성된 요리를 하나의 상에 올리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말 그대로 넉넉한 잔치였다.
세 명의 셰프가 준비한 코스는 첫 번째 한 입 거리부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냉이와 돼지감자 퓌레 위에 캐비어를 올린 소설한남의 냉이죽, 오이와 참외를 겹겹이 쌓고 된장 소스를 곁들인 주은의 줄전갱이회, 한우 채끝살을 품은 비채나의 바삭한 약밥부각이 나란히 상에 올랐다. 서로 다른 레스토랑에서 준비한 요리였지만 한 상 안에서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마치 한 레스토랑에서 준비한 코스처럼 완성도를 보여줬다.
이어진 두 번째 한 입 거리에서도 조화는 이어졌다. 메밀 향이 은은한 증편에 대추 양념과 트러플을 올린 주은의 요리, 새우 약고추장 비빔밥을 김 부각 속에 채운 소설한남의 성게알 타르트, 볏짚에 훈연한 웅피조개에 고추장 소스와 미나리 오일을 더한 비채나의 구이가 균형을 이루며 식사의 리듬을 만들었다.
본격적인 중심 요리에 들어서자 세 셰프의 요리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비채나는 전복에 무와 다시마를 감싸 부드럽게 쪄낸 뒤 홍합과 가리비 살로 속을 채운 전복선을 선보였다. 주은은 대겟살 위에 돌나물과 취나물 등 제철 나물을 정갈하게 올린 탕평채로 시작을 알렸다. 소설한남은 대구살 어묵과 감자옹심이가 어우러진 맑은 대구찜을 내놓았는데, 미나리와 유채꽃 고명에 청양고추 오일을 더해 한식 특유의 시원함과 칼칼함을 살렸다.
이번 잔치의 정점은 단연 ‘대보름 한상차림’이었다. 오곡밥과 두릅 뭇국을 중심으로 너비아니, 우엉잡채, 황태조림, 새우 연근전 등 다채로운 반찬이 상을 가득 채웠다. “다이닝을 즐긴 뒤 종종 느껴지는 아쉬움을 채우고 싶어 일부러 더 풍성하게 준비했다”는 엄태철 셰프의 설명처럼, 숯불에 구운 한우 등심 너비아니와 아홉 가지나물은 보름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담아냈다. 특히 전광식 셰프가 “평소 잡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식감을 고민했다”고 밝힌 우엉 잡채는 칡 전분 당면에 곱게 채 썬 우엉과 트러플을 더해 오독한 식감과 깊은 향을 동시에 살렸다.
여기에 한 해 동안 기쁜 소식만 듣기를 기원하며 마시는 정월대보름의 풍습인 ‘귀밝이술’의 의미를 담아 화요 프리미엄 생막걸리가 곁들여지며 음식과 술의 조화를 더했다. 이와 함께 소설한남의 김태현, 비채나의 서제현, 주은의 이재형 소믈리에가 각각 탕평채, 전복선, 대구찜에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을 제안해 식사의 깊이를 더했다.
박주은 셰프는 “한식 셰프들과 함께 호흡하며 정월대보름의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며 “내년에도 이 따뜻한 잔치를 이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세 명의 한식 셰프가 함께 차린 이날의 상은 각자의 개성을 앞세우기보다 하나의 상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정월대보름의 의미처럼 넉넉한 복을 나누는 시간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