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의 공통된 주제는 ‘새 먹거리’였다. 초기 2차전지 시장 성장을 이끌었던 전기차 산업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빠진 뒤 버텨왔던 배터리업계는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 먹거리를 찾아내며 재기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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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심장 파고든 2차전지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표되는 피지컬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에너지저장장치(ESS)·로보틱스·드론·모빌리티 등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성능 원통형 배터리를 장착한 홈 로봇 ‘클로이드(LG전자)’, 자율주행 로봇 ‘카티100(베어로보틱스)’ 등을 전시했다. LG엔솔 관계자는 “가혹한 산업 환경에서도 원통형 배터리의 강력한 출력과 내구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LG엔솔의 46시리즈 원통형 삼원계 배터리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보스턴다이내믹스)’와 ‘옵티머스(테슬라)’에도 사용된 제품이다.(
중앙일보 2월 12일자 B1면)
삼성SDI는 휴머노이드 로봇 모형을 앞세워 피지컬 AI용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 양산 목표로 향후 각종 로봇, 항공 시스템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 중국인 관람객은 “한국의 어느 공장에서 생산하느냐” “구체적인 스펙을 알 수 없느냐”고 묻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주용락 삼성SDI 연구소장은 부대행사 기조연설에서 “배터리는 전기차를 넘어 ESS, 로봇, 도심항공교통(UAM)의 미래를 이끄는 핵심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며 “글로벌 로봇용 배터리 수요는 지난해 0.03기가와트시(GWh)에 불과했지만, 2040년 138.3GWh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외에도 다양한 로보틱스 협업 사례도 선보였다. SK온은 현대위아와 함께 자율이동로봇(AMR)을 선보였고, 포스코퓨처엠은 포스코그룹이 개발한 제철소 위험작업용 사족보행 로봇을 전시했다.
이밖에 LG엔솔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실물 및 실물 모형을 처음으로 전시했는데, 프리미엄 전기차를 비롯해 항공과 UAM 등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AI 데이터센터를 겨냥해 무정전 전원장치(UPS)용 각형 배터리(U8A1)와 ESS 통합솔루션을, SK온은 기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를 약 14~19% 높인 파우치형 ESS 배터리 등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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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30년 R&D투자” 삼성 “특허 있냐” 신경전
이날 삼성SDI와 LG엔솔은 자사의 기술 경쟁력을 과시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LG엔솔은 2차전지 전 분야를 아우르는 경쟁력을, 삼성SDI는 자사의 주력 폼팩터인 각형 배터리 기술을 앞세웠다.
김제영 LG엔솔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 누구는 30년간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하는데, 누구는 1~2년 연구하다가 (기술을) 카피하고 사람들 데려간다”며 “늦게 오신 분들은 그에 대한 수업료를 내고 연구개발을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겨눴다.
주용락 삼성SDI 연구소장은 “미국에 등록된 각형 배터리 관련 특허는 삼성SDI가 1200여건, 중국·일본 경쟁사는 600건, 국내 다른 경쟁사들은 30~40건뿐이다. 각형 배터리 기술·재료·설계·제조 노하우 등을 갖고 있다”며 “전고체 관련 특허도 총 1100여건으로 한국 기업 중 1위”라고 말했다.
그러자 경쟁사인 LG엔솔 소속이라고 밝힌 직원들이 주 소장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주 소장은 ‘각형 배터리의 원천적이고 강력한 특허를 소개해보라’는 질문에 “금속의 가공·용접부터, 대형 셀에 전해액을 균일하게 주입하는 기술 등 광범위한 특허를 갖고 있다”고, ‘전고체 배터리가 안전한데, 굳이 전기차나 도심항공교통(UAM)에서 무거운 각형 케이스를 써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경량화가 중요한 로보틱스·UAM은 각형 배터리를 고집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전기차는 전고체·각형으로 가야 한다”고 각각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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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배터리 장악한 中 자신감
소재·장비사들도 다양한 제품을 공개하며 기술력을 뽐냈다. SKC의 2차전지용 동박 사업 투자사 SK넥실리스는 2차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 기술을, 엘앤에프는 세계 첫 니켈함량 95%의 양극재 ‘NCMA95’ 기술을 선보였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중국 기업들의 자신감도 엿볼 수 있었다. 중국은 2차전지 제조사 대신 소재·장비사들이 참여했다. 중국 여압기(압력유지장치) 제조사 관계자는 “리튬배터리 제조에 적합한 여압기인데, 크기가 작으면서도 자동화율이 높으며 고장 진단도 원격으로 할 수 있어 어느 나라 제품보다 우수하다”고 소개했다.
현장을 둘러본 이관형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소재·재료·부품 등 분야에선 중국·유럽 기업들도 대거 전시에 참여해 눈에 띄었다”며 “국내 배터리산업이 끝단(제품화)에선 기술경쟁력 등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소재·재료·부품 등 토대는 약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전반에 걸쳐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