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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소 레이디’…전기톱 조각가의 ‘내 영혼의 노래’

중앙일보

2026.03.11 02:11 2026.03.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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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호암미술관에서 17일부터 열리는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층 전시장 전경. 사진 전명은
" 나무는 바로 나예요. 자연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 같아요. 이런 순간이 오리란 건 상상도 못 했어요. "
11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껍질이 그대로 살아 있는 근육질 목조각으로 가득한 1층 전시장에서 김윤신(91)이 말했다. 호암미술관은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그의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의 17일 개막을 앞두고 프레스 프리뷰를 열었다.

나무를 깎에 만든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 옆에 선 김윤신(91). 사진 전명은
1935년 함경남도 원산 태생(현 강원도 원산시). 조각가 김윤신의 시작도, 전환점도 나무였다. 유년기 기억나는 장면은 쓰러진 소나무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은 함경남도의 시골 마을도 비껴가지 않았다. 전쟁으로 기름이 부족해진 일제는 송진에서 기름을 채취하겠다고 소나무를 함부로 벴다. ‘친구같은 저 나무들을 바로 세워주고 싶다’고 어린 김윤신은 생각했다. 해방 후 어머니와 38선을 넘었고, 6ㆍ25 땐 부산까지 피란을 갔다. 우연히 보게 된 미술 전람회에 감동해 1955년 홍익대 조소과에 들어갔고, 파리 에콜 데 보자르로 유학 다녀왔다. 상명여대 교수로 임용된 게 1980년, 45세였다. 다 자리 잡은 것 같은 그때, 파리도 뉴욕도 아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멈췄다.

1983년 조카의 초대로 간 지구 반대편, 비행기에서 내리기도 전에 매료됐다. 산도 없이 너른 평원과 숲이 있었다. ‘남미에 있는 재료는 내가 한번씩 거쳐서 가겠다. 여기서 내가 작품을 한 1000점 정도 하면 돌아가야지’ 마음먹었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파주 작업실에서 만난 조각가 김윤신.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다. 파주=우상조 기자
70여 년을 예술에 헌신해 온 현역 작가 김윤신의 작품은 1500여점에 이른다. 전시는 가장 초기작인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의 석판화부터 이후의 실험적인 평면 작품 51점, 조각 124점을 엄선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재료와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로 탄생(分)한다는 김윤신의 작품 철학. 그는 특히 "분(分)은 사랑"이라며 "나눔 없이는 세상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돌처럼 단단한 나무 팔로산토를 전기톱으로 베어 만든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으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다. 사진 솔로몬 구겐하임 재단

1층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는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 아르헨티나의 팔로산토 나무를 전기톱으로 베고 깎은 181㎝ 높이 수직 조각이다. 나무의 껍질과 속살을 그대로 살린 이 작품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아르헨티나의 단단한 목질에 놀란 그는 전기톱을 쓰기 시작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지금도 4~5㎏ 전기톱은 거뜬히 다룬다. 김윤신이 이 작품의 탄생기를 이렇게 돌아봤다.
" 내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내가 되는 순간을 기다렸어요. 별도의 구상 없이, 머리가 깨끗해져 아무런 생각을 안 들 때 톱을 탁 들면 공간이 보이기 시작해요. 모든 삶이 지금 이 순간, 찰나잖아요. "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이듬해 헨리 무어(1898~1986) 조각전, 지난해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회고전 등 굵직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이 미술관에서 한국 여성 미술가의 회고전을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년기의 암흑과 상처를 전시장에 풀어낸 부르주아와는 대조적으로, 밝은 전시장에는 생의 환희,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가 넘친다. 환희로 가득한 삶은 아니었는데도 그렇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전쟁통에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스스로 쌓아 올린 이름을 버리고 아르헨티나에서 묵묵히 작업하다가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초대되는 등 늦은 전성기를 맞이한 김윤신이다.
김주원 기자
나무의 껍질과 속살, 그 생명력을 살린 목조각의 산책길처럼 구성한 1층을 보고 나면, 2층에서는 오닉스와 준보석을 자른 석조각, 그리고 코로나19 때 1년 가까이 노인들의 출입을 제한한 아르헨티나에서 폐목 조각을 주워 채색한 그의 ‘회화-조각’ 시리즈를 볼 수 있다. 멕시코 푸에블라 테칼리의 채석장에서 지내며 오닉스를 깎고, 아르헨티나 원주민들의 풍부한 색감에 매료된 김윤신의 여정이 그대로 작품으로 남았다.

호암미술관 2층 마지막 공간은 색의 런웨이다. 톱자국이 생생한 거친 목조각부터 폐목을 주워 채색한 코로나19 시기의 작업까지 이어진다. 사진 전명은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는 “톱질과 망치질 자국으로 가득한 그의 조각은 요즘의 미술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작가’라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김성원 부관장은 "한손엔 나무, 한손엔 전기톱. 김윤신은 우리 미술계 여전사의 원조라 할 작가"라며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에 마땅히 새겨져야 할 이름을 오늘 이 자리에 불렀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성인 2만5000원. 이우환 신작들이 있는 옛돌정원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중앙일보가 마련한 '예술가와의 오후'
경기도 파주 작업실의 조각가 김윤신. 우상조 기자
‘김윤신과의 만남’ 4월 10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K3 오디토리움에서 열립니다.
권근영 기자의 진행으로 김윤신의 육성을 전합니다. 이어 5월 김보희, 10월 박대성, 12월 서도호 작가와의 만남이 이어집니다.
'Art Talk: Masters' 신청은 아래 링크,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는 배너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https://www.joongang.co.kr/membership/exclusive/theart/2026arttalkmasters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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