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중동 정세 악화를 계기로 휘발윳값이 급등할 조짐이 보이자 국제 기구 회원국의 합의와 별도로 선제적으로 비축유 방출에 나서기로 했다.
교도통신과 NHK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1일 총리 공저(公邸·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르면 16일 비축유를 단독 방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간 비축유 15일분과 국가 비축유 1개월분을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연계된 국제적 비축유 방출의 정식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비축유를 (단독으로) 방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축유 방출은 IEA 회원국들이 협력해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 정부가 단독으로 실시할 경우 1978년 관련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첫 사례가 된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일본의 비축유 방출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2022년 이후 4년 만이다. 일본은 소비량 254일분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비축유 방출 배경과 관련해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이달 하순 이후 우리나라(일본)의 원유 수입은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그는 원유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점을 고려해 석유 제품 공급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축유를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에서 유조선이 출항하면 일본까지 약 20일이 걸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2월 28일 시작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휘발유 소매가를 L(리터)당 170엔(약 1천583원) 수준으로 억제하고, 경유·중유·등유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이 이날 발표한 9일 기준 일반 휘발유 전국 평균 소매가는 L당 161.8엔(약 1천503원)으로 전주와 비교해 3.3엔(약 31원) 올랐다.
일본에서 휘발유 가격이 160엔(약 1천486원)을 넘은 것은 작년 12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상승세는 4주째 이어졌다.
휘발유 가격을 조사하는 일본 석유정보센터는 중동 정세 악화로 내주 휘발유 가격이 20엔(약 186원) 넘게 올라 L당 180엔(약 1천672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이 경우 휘발유 가격은 한 주 만에 10% 이상 급등하게 되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실제로 정유업체 에네오스는 오는 12∼18일분 도매가를 L당 26엔(약 242원) 인상한다고 계열사 주유소에 통보했다.
이는 중동 정세를 반영한 조치로, 20엔을 웃도는 인상은 이례적이라고 닛케이가 짚었다. 에네오스는 지난 5∼11일분 도매가를 2.5엔(약 23원) 올린 바 있다.
한 주유소 소장은 도매가 인상분이 그대로 소매가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소비자가 몰릴 경우 기름 조달이 어려워져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휘발유 가격이 역대 최고였던 L당 186.5엔(약 1천736원)을 넘어 일시적으로 200엔(약 1천862원)을 웃돌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본 휘발유 가격은 부과되는 세금이 적어 한국보다 다소 낮다.
일본 정부는 도로 정비 재원 확보를 위해 1974년부터 L당 25.1엔(약 233원)씩 부과해 온 휘발유세의 옛 잠정세율을 지난해 연말 폐지했다.
기존 보조금 등을 고려하면 실제 휘발유 소매가는 15엔(약 139원) 정도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일본에서는 휘발유는 물론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마저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일본은 LNG의 경우 원유와 달리 중동 의존도가 10% 정도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이 조달하는 LNG 가격은 원유 가격과 어느 정도 연동하게 돼 있어서 중동 정세 악화가 장기화하면 LNG도 오를 수 있다고 요미우리가 짚었다.
일본은 LNG를 원료로 하는 화력발전 비중이 31.8%에 달해서 LNG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도 연쇄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요미우리는 "원유 가격이 LNG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이 흐름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데에는 4∼9개월이 걸린다"며 "냉방 수요로 전력 소비가 늘어나는 여름에 부담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해설했다.
이어 "LNG는 석유와 같은 국가 비축 제도가 없고 장기 비축이 어렵다"며 소비량 254일분을 비축한 석유와 달리 LNG 비축량은 3주분으로 적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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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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