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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의 ‘필향만리’] 運去金成鐵 時來鐵似金(운거금성철 시래철사금)

중앙일보

2026.03.11 08:06 2026.03.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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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지자불여복자(知者不如福者)’라는 속언이 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라도 복이 굴러 들어오는 사람만은 못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대개 노력에 비해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것을 운(運)이고 복이라고 여긴다. 운이 떠나면 황금도 무쇠 역할밖에 못 하고, 운이 들어와 때를 만나면 무쇠도 황금의 역할을 한다. 이런 때 사람들은 운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 운이 나쁘다고 느낄 때는 용기 내어 운에 맞설 필요도 있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때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맞섬은 불운을 다 막지 못하지만 지혜는 불운을 피하게 한다.

 運:운수 운, 去:갈 거, 鐵:쇠 철, 似:같을 사. 운이 떠나면 금도 쇠가 되고, 때를 만나면 쇠도 금과 같이 쓰인다. 29x73㎝.
대개의 행운은 잡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맑은 생각을 갖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청나라 때 문인 장조(張潮)는 “첩의 아름다움이 아내의 현숙함만 못 하고, 돈 많음이 처지가 순탄함만 못하다(妾美不如妻賢, 錢多不如境順)”고 했다. 첩을 거느리겠다는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명한 아내를 잃고, 돈으로 잡다한 욕심을 다 채우겠다는 망상에 빠진 사람은 결국 불행한 처지에 처하게 된다. 운이나 복에 대해 흔히 ‘굴러 들어온다’는 표현을 쓰지만, 사실 운이나 복은 스스로 ‘지은’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복 많이 받으세요”보다는 “복 많이 지으세요”가 진짜 복을 불러들이게 하는 인사말이다.

조선 전기의 문인 나세찬(羅世纘·1498~1551)은 ‘추국춘란각유시(秋菊春蘭各有時)’, 즉 ‘가을 국화와 봄 난초는 피는 철이 각기 다르다’고 읊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전에 쓴 ‘필향만리’ 글에서 ‘북송남죽별소처(北松南竹別所處)’, 즉 ‘북쪽의 소나무와 남쪽의 대나무는 처지가 다르다’는 대구를 지어 붙인 적이 있다. 금이 무쇠가 되는 불운이나 무쇠가 황금이 되는 행운은 따로 있지 않다. 다 때와 장소에 맞게 사는 지혜의 결과일 뿐이다. 지은 대로 굴러 들어오는 것이 운과 복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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