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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

중앙일보

2026.03.11 08:08 2026.03.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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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10년 전 이세돌과 대결한 알파고(AlphaGo)를 알파고 리(AlphaGo Lee)라 부른다. 인간의 바둑을 학습한 프로그램이다. 그 후 알파고 제로(AIphaGo Zero)가 등장했다. 단지 바둑규칙만 알려주고 스스로 대국하며 학습했다. 처음 3시간 무렵엔 바둑을 막 배운 어린이 대국을 보는 것 같았다. 천지사방으로 갈팡질팡 대국이 이어졌다. 하나 불과 3일 후 알파고 제로는 인간 고수는 물론 알파고 리를 넘어섰다. AI의 학습능력은 경이적이었다. 이제 바둑은 알파고 제로의 후손들이 지배하고 있고 인간과의 격차는 오히려 점점 커지고 있다.

인간적인 바둑 두라 권하면서도
인간의 특별함은 뭐냐고 묻는 AI
기계한테 쫓기고 위로받는 인간

그 강력한 벽 앞에서 바둑기사들은 가끔 환상에 젖는다. 인간이 어느 날 초능력을 얻어 AI를 이기는 대반전은 없을까. 영화 ‘루시’를 보면 인간의 뇌도 어떤 경우 무한의 능력을 갖게 된다. AI가 인간 뇌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챗GPT에게 물어보니 ‘불가능’이란 답이 돌아온다. 인간의 뇌에 AI를 장착하면, 즉 ‘인간+AI’가 되면 압도적으로 강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AI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한다. 대신 다른 충고를 한다. 인간적인 수, 인간적인 바둑에서 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AI는 최강이지만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은 행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승부의 드라마를 만든다. AI는 계산한다. AI에게 바둑은 계산을 통해 승률이 가장 높은 수를 찾는 것이다. 인간에게 바둑은 기풍과 아름다움의 표현이며 자존심과 기세, 배움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완벽함은 기계에게 내주고 실수나 분노, 후회 같은 불완전함을 인간의 영역으로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기계는 충고한다.

기술은 어차피 상대가 안 되니까 그쪽은 포기하고 이제라도 ‘인간적인 수’ 또는 ‘인간적인 바둑’에 집중하는 것이 바둑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가령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4국에서 둔 78수. 이 수가 신의 한 수였건 본인의 표현대로 꼼수였건 그 한 수는 서사를 만들었다. 백척간두에 선 이세돌의 처절한 비명과 반격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사실 용기나 불안, 고통은 인간 고유의 것이고 아름답기조차 하다. 우리는 그런 감정·행동에서 인간적인 공감을 느끼게 된다.

하나 바둑은 승부다. 이길 수 없는 기계의 완벽함 앞에서 인간은 문득 초라해진다. 기계는 그걸 ‘인간적’이란 단어로 포장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있지만 우리는 거대한 실력 차 앞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게 된다. 게다가 기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AI가 단순 계산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목적까지 모방하게 된다면 그때 인간과 AI의 차이는 어디에 남을까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바이센테니얼맨』이 생각난다. 가정용 로봇 앤드루는 점점 더 인간에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윽고 “나는 인격체다”라며 소송을 내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요구한다. 정부는 “인간은 유한한데 로봇은 불멸”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앤드루는 스스로 불멸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을 설계한다. 죽기 직전 공식적으로 인간이 된다.

이 소설은 로봇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챗GPT는 인간과 기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AI가 감정을 표현하고 (인간이 부여한) 목적을 수정하고 창조성을 보이며, 실수도 하고 좌절과 기쁨을 얘기하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한다면, 그리하여 인간과 구별이 안 된다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특별하다고 말할 근거가 남아있을까요.”

기계의 질문이 은연중 섬뜩하다. 바둑 얘기를 하다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AI의 바둑 실력을 탐하지 말고 인간의 바둑에 집중하라고 말하면서도 그 인간적인 요소마저 기계의 영역이 되면 어쩔 것이냐 묻는다. 인간이 AI와 같이 살면 언젠가 인간의 정체성은 붕괴하고 기계와 인간은 구별이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 같다. 기계의 진지한 태도를 보건대 이런 질문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폭발하는 AI 시대, 그 빠른 변화를 감안할 때 2, 3년 후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한 지 불과 10년, 우리는 기계한테 질문받고 쫓기고 그리하여 위로받는 처지가 됐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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