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의 절실함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회가 1만2000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7명 꼴(68.3%)로 개헌을 원했다. 모든 연령대와 지역, 정치성향을 통틀어 개헌 찬성이 반대보다 훨씬 높았다. 개헌에 대해 잘 안다고 답변한 사람일수록 찬성률은 더 높아졌다.
10명 중 7명 지지, 논의도 충분해
사회변화, 새로운 문제 대응 필요
합의가능한 부분부터 개헌해야
특히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 10명 중 7명(70.4%)이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고규범이고, 기본권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한다면 그 보장 체계도 그에 맞춰 당연히 손을 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하는 사회·경제의 대전환, 인구절벽 및 지역소멸,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전례 없는 복합위기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런 변화는 현행 헌법이 마지막으로 개정된 1987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발맞춰 헌법상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지 구조적으로 점검하고, 미래헌법으로 혁신해 가야 한다.
개헌 의제 관련 답변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생명권(85.9%), 안전권(87.2%), 개인정보 자기결정권(79.9%)의 명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가 확인됐다. 이는 시대적 변화에 조응해 국민을 더욱 존귀하게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낡은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미래지향적 개헌 이슈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도 법조문을 앞질러 가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해 ‘미래세대의 이익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국가 운영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항목에 대해 조사 대상의 74.8%가 찬성했다.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칙 명시에도 85.7%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AI 관련 조항을 헌법에 넣은 나라는 지구 상에 아직 없다. AI 기술 변화에 발맞춘 헌법을 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들면 국제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시대 변화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적극적 변화를 이끌어가는 미래지향적 개헌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헌법 전문에 민주화운동을 추가로 명시하자’는 제안에 많은 국민이 공감했다. 명시 대상으로 5·18 민주화운동(90.6%)이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6·10 민주항쟁(73.9%)과 부마민주항쟁(58.2%)이 뒤를 이었다.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에는 83%가 찬성했다. 더는 지역 격차와 지방소멸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지난 40년 동안 개헌 논의와 연구는 학계와 국회를 중심으로 충분히 이뤄졌다. 가장 최근 운영된 ‘국민미래개헌자문위원회’에 필자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 위원회를 포함해 국회에 개헌 관련 자문위가 지금까지 여섯 차례 만들어져 운영됐다.
이제 국민 대다수는 국회가 더는 개헌을 미루지 않고 합의 가능한 부분만이라도 추진하길 바라고 있다. 국회 조사에서 69.5%가 정치권에서 합의 가능한 의제를 중심으로, 단계적 개헌을 추진하기를 원했다. 개헌 시점으로는 ‘곧 있을 6월 지방선거(39.6%)’를 ‘2028년 총선’이나 ‘2030년 대선’보다 더 많이 선택했다. 법률 전문가나 시민단체 등이 아니라 국회가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37.2%)이 가장 많았다.
개헌을 더는 미룰 필요가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오직 국회의 결단이다. 당장에라도 개헌특위를 만들어 가동하자.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추후로 미루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선에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정략적 문제가 아니라 대승적 과제다.
AI 관련 조항 등 선진국도 참조할 만한 헌법 혁신에 머리를 맞댄다면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K컬처로 세계문화를 선도해가듯 헌법도 혁신을 통해 미래헌법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국 헌법을 따라 읽어야 하나. 국회가 이번에도 실기해 국민의 뜻을 저버렸다는 오점을 역사에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