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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근의 경제를 묻다] “과속이 널뛰기 불러…증시 마지막 퍼즐은 상속세”

중앙일보

2026.03.11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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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가치투자가 이채원 의장
조민근 논설위원
대세 상승에 열광하던 증시가 어느새 심각한 조울증에 빠졌다. 하루걸러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널뛰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밤잠 이루지 못하는 투자자도 그만큼 늘었다. 투자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1년 전 50조원 수준에서 이달 132조원까지 불어났다. 빚을 내 투자한 금액인 신용융자잔고도 같은 기간 18조원대에서 32조원으로 급증했다.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규모도 하루 평균 32조원으로 석 달 새 5배가 됐다. 새로 진입한 투자자들이 ETF를 주로 활용하면서다.

전쟁 아니라도 겪었어야 할 조정
기업 실적 나오는 4월이 분기점
기업 승계 숨통 틔워야 돈도 돌아
코스닥 활성화, 정체성 확립부터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을 10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국내 대표적 가치투자가인 그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등을 거치며 38년간 시장에 몸담아 왔다. 전민규 기자
우리 증시는 어디쯤 와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국내 대표적 가치투자가인 이채원(62)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을 만나 물었다. 시장의 변덕 속에서도 주가는 결국 제 가치를 찾아간다는 게 가치투자자의 믿음이다. 단꿈을 잠시 접고 현실을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때 이들의 시각만큼 유용한 게 없다. 이 의장은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를 거치며 가치주펀드인 ‘10년 투자’ 시리즈 등을 키워 냈다. 38년째 시장에 몸담은지라 웬만한 변동성에는 이골이 났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정도의 급변동은 처음 겪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한국 증시가 본격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의 출발점이자 갈림길에 섰다고 했다.

외국인 장기 자금 유입이 관건

Q :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 탄 증시다. 단순히 이란 사태 때문이라고 하기엔 변동성이 지나치게 큰 데.
A : “가장 큰 원인은 주가가 너무 급하게 올랐다는 데 있다.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22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미국의 이란 공격 전까지 무려 3배 가까이 올랐다. 단기간에 이렇게 주가가 급등한 사례는 1999년 미국 닷컴버블 때를 제외하곤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에선 10년이 걸린 일이 우리 증시에선 불과 14개월 만에 이뤄졌다. 결국 전례 없는 상승 속도가 전례 없는 변동성도 낳은 셈이다.”


Q : 어차피 거쳐야 했을 조정이란 얘기인가.
A : “이란 문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핑계로라도 지수는 빠졌을 것이다. 신용잔고가 급증하는 등 시장의 모든 지표가 이미 초과열 신호를 내고 있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없었다면 몇달 간 지루하게 흘러내리며 조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늘 오르는 주식은 없다. 역사상 초강세장에서도 10% 이상 조정은 항상 있었다. 가까이는 지난해 코스피가 4000을 넘어섰을 때도 상당 폭 빠졌다가 다시 오르지 않았었나. 시장 전체로 보면 거품이 끼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른바 유망 산업 중에도 기대만으로 이미 가격이 많이 오른 종목들도 눈에 띈다. 열기를 한번 식히고 갈 필요가 있다.”


Q : 증시가 빠르게 튀어 오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A : “워낙 눌려 있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주요국 증시 평균의 절반도 안 됐다. 계엄사태 이후 6개월간 거의 무정부 상태에서 관세 리스크까지 닥치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새 정부 들어서 경기 부양에 나서고 1차 상법 개정과 배당소득 분리 과세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을 펼치면서 3500선까지 빠르게 간극을 메웠다. 이후에는 반도체의 역할이 컸다. 10여년 새 우리 산업구조도 많이 변했다. 시총 10위권 기업들의 구성부터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철강, 석유화학 등 경기에 민감하고 대외 의존도가 너무 높은 산업들이 많았다. 지금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반도체, 우주항공, 배터리, 바이오 등이 대신 자리 잡고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가 기업이 한 해 벌어들이는 주당 이익의 몇 배인지를 나타낸다. 배수가 낮을수록 주가는 저평가됐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Q : 개미 투자자들이 대거 진입한 반면 외국인은 많이 팔았다.
A : “외국인이 한국을 떠난다기보단 기계적 매매로 보인다. 그간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차익 실현 성격이 강하다. 우리가 접촉하는 미국 현지 투자사들도 한국 시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 자금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다. 관건은 10~20년 들고 가는 장기투자 자금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것인가인데 아직은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아무래도 단기 급등이 부담스러운 데다, 이란 문제 등 외부 환경도 좀 안정돼야 할 것이다.”

주식 매력도 높여야 ‘머니무브’

Q :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탈출했다고 봐야 하나.
A : “이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다고 봐야 한다. 극심한 저평가 상태는 벗어났지만, 경쟁국 증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향후 1년간 상장기업들이 벌어들일 이익 추정치를 기준으로 본 PER은 10배 수준이다. 반면 일본과 대만은 18배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급증한 반도체 이익 전망치 등이 현실화할 것인지, 내년 이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분기점은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나오는 4월이 될 것으로 본다. 안정적인 실적과 함께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면 증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다.”


Q :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없나.
A : “마지막 퍼즐이 하나 남아 있다. 상속세 문제다. 전 세계 어디에 가도 모든 지배주주들은 자기 회사 주가가 오르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율이 최고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주가 상승이 승계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장기업 대주주에게 주가를 올릴 수 있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건네면 ‘아직 애도 어리고 승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이래서는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어렵다.”


Q : 정부는 부자 감세 논란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A :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진보 정부이니 추진해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세율 조정이 당장 어렵다면 가업 승계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 독일은 승계를 ‘부의 이전’이 아니라 ‘책임의 이전’으로 본다. 꼭 자식이 아니라도 직원이나 제3자에게도 승계할 수 있고, 일정 기간 기업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최대 100% 면제한다. 회사를 정리하기 이전에는 과세를 이연해 주는 방식으로 일단 승계에는 문제가 없도록 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Q : 여권은 주가 누르기 방지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A :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은 기업은 상속세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압박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산업의 성장성이나 업황이 나빠 주가를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는 경우가 있다. 채찍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당근도 같이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도 살아나고, 고여있는 돈이 돌 수 있다. 지금도 현금만 잔뜩 들고 가만히 있는 기업들이 많은데, 돈이 생산적인 분야로 투입될 수 있도록 숨통을 좀 틔워 줘야 한다.”


Q : 정부는 증시 활성화로 돈이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A : “우리 가계자산의 65%가 부동산에 쏠려 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하면 높은 게 맞다. 다만 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좇는다. 쏠림이 생긴 건 그만큼 부동산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에서 이른바 ‘불패신화’가 만들어지는 사이 주식은 그렇지 못했다. 꾸준히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높여주는 게 쏠림을 완화하는 길이다.”

‘빚투’는 투기, 결코 성공 못 해

Q : 코스피에 이어 코스닥 활성화가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더 솎아내겠다는데.
A : “코스피도 그렇지만 코스닥도 특정 지수를 목표로 내걸고 부양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지수는 자본시장 활성화의 결과물이지 목표가 아니다. 코스닥은 코스피와는 상황이 좀 다르다. 코스피는 기업 이익에 비해 저평가됐다는 근거가 있었다. 하지만 코스닥은 상장기업들 이익을 모두 합해도 SK하이닉스 한 기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단순히 부실기업을 더 솎아낸다고 시장이 활성화되긴 어렵다. 현재 코스닥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덩치가 커지면 코스피로 빠져나가 버린다. 코스닥을 진취적이고 성장성이 강한 핵심 전략산업의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입 기업에 확실한 혜택을 주되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Q : 활황장에 새롭게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가 많다. ‘빚투’와 레버리지 활용도 부쩍 늘었는데.
A : “빚을 내거나 레버리지를 쓰는 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다. 길게 봐선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이번 급락에서도 나타났지만, 주식시장에선 어떤 일이라도 벌어질 수 있다. 우량주는 충격을 받더라도 결국 회복된다. 하지만 ‘빚투’는 결국 청산 당하니 그 기회도 잃는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다. 미치도록 사고 싶을 때 팔아야 하고, 너무 두려워 내던지고 싶을 때 사야 하는 게 주식이다. 그 두려움과 욕망을 이겨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투자 대가 워런 버핏이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높은 지능이 아니라 건전하고 지적인 체계’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다.”





조민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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