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명소인 내셔널몰 서쪽 끝 포토맥 강변 언덕 위에 흰색 대리석 신전이 우뚝 서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기념관이다. 높이 5.8m의 석조상 링컨은 근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직선으로 3.2㎞ 정면에 위치한 미 의회 의사당을 응시한다. 분리주의자를 상대로 미 연방(합중국) 통합을 수호한다는 의미다.
링컨, 남북전쟁 종전 후 치유·통합
여야, 내란청산 놓고 각각 내분 벌여
선거철 지나 사법 3법 머리 맞대야
링컨 오른쪽 남실 벽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1863년 11월 19일)이 새겨져 있다. 반대편 북실 벽에는 대통령 재선 취임 연설문(1965년 3월 4일)이 음각돼 있다. 남북전쟁 종전을 불과 41일 앞둔 연설에서 링컨은 전쟁 승리를 환호하거나 반란세력 척결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치유와 화해, 재건과 통합을 얘기했다. “누구에게도 적의가 아닌 관용을 베풀며 국가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자신과 모든 국가들 사이에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다하자”고 하면서다.
내란 청산을 놓고 여야가 벌이는 내분 양상을 보고 있자면 링컨의 통합 노력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이후 검찰 폐지에 이어 ‘사법 3법’ 강행 처리를 통한 사법부 변혁까지 내란 척결 시즌1, 시즌2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 78년간 유지해 온 형사사법 체계는 물론이고 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기본인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법조계와 언론, 국민 우려에도 귀를 닫았다.
그러다가 중수청·공소청 설치 후속대책 성격인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문제를 놓고 여권 내 강경파(폐지론자)와 친명 지지층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강경파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재야 책사’ 역할을 해 온 구독자 228만 유튜버 김어준씨가 주동이다. 김씨가 10일 진행한 유튜브 방송에서 한 패널이 정부 고위 관계자가 검사들에게 수사권 존치와 이 대통령의 대장동·대북송금 사건 공소취소를 거래하려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더니 급기야 11일 방송에선 다른 패널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대통령 탄핵 사유”란 언급까지 했다. 정부 출범 10개월 만에 여권 내부에서 탄핵이란 단어가 공공연히 거론된 건 역대 정권 전부를 통틀어도 초유의 일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한심한 정도를 넘었다. 지방선거를 80여 일 앞두고 계엄 사과와 노선 혁신에 대한 장동혁 대표의 버티기로 오세훈 서울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 현직 광역단체장이 당 후보 등록 신청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정도면 정당이 선거를 치르지 않겠다는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러곤 하루 만인 9일 소속 의원 107명 전원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를 명확히 반대한다”가 골자인 이른바 ‘절윤 선언문’이란 걸 채택했는데, 내용 자체가 코미디다. 그간 국민의힘은 내란 우두머리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복귀’를 암암리에 도모해 왔단 얘긴가. 노선을 어떻게 혁신해 보수정당을 되살릴 수 있을지 실질적 내용은 한 자도 씌어 있지 않은 ‘윤 어게인’과의 절연 선언은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작 이 같은 노선 투쟁을 촉발한 장동혁 대표는 의총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소극적 찬성’을 한 모양인데 진정성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링컨이 종전 닷새 만에 남부 지지자에 의해 암살될 정도로 미국의 통합은 지난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사망자(85만 명)를 낳은 ‘내전’의 단층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남북전쟁 후 노예 해방과 시민권·투표권 부여를 골자로 수정헌법을 만드는 방식, 즉 개헌을 통해 헌정 질서를 재건했다. 이 대통령 말처럼 개혁이 번거롭다고 혁명을 할 수는 없다. 선거철이 지난 뒤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내란 청산으로 불거진 헌법적 혼란을 수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