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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작은 법정이 되어가는 교육 현장

중앙일보

2026.03.1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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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다. 학교폭력 사건을 오래 다뤄 온 변호사 지인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요즘도 많이 바쁘냐고 물었더니 사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물어보았다. 본인 아이가 중학생인데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잠시도 망설임 없이 돌아온 답은 예상 밖이었다. ‘학폭으로 커지기 전에 자퇴부터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학폭 사건, 입시 연계 정책 여파로
변호사 선임 늘고 법률 분쟁화
취약한 학생이 더 피해보는 구조
학교가 갈등 해결할 권한 가져야

제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대응 경험도 충분한 사람이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느냐고 되묻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겪게 될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견디게 하고 싶지 않다’고. 이 한마디가 지금 대한민국 학교폭력 제도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었다. 법이 생기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률을 누더기 땜질하다보니 최근 학교폭력 제도는 교육 현장에서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학교가 법정 축소판이 되고 있다. 학생 사이의 사소한 갈등부터 심각한 폭력까지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되면 조사와 기록, 진술 절차가 시작된다. 사건의 경중과 관계없이 법적 다툼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는 방대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상당수 사건은 교육지원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넘어간다. 전체 신고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 밖 심의 절차로 이어지는 중이다. 불복률도 높아져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교실에서 풀려야 할 문제가 법률 분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가해 학생에게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는 정책은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정의 실현이라며 날로 강화되는 이 정책을 현장에서 실제 사건에 적용해보면, 그 부작용이 적지 않다. 학폭 기록이 입시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사건은 교육적 해결보다는 기록과 증거 수집을 둘러싼 싸움으로 흘러가기 쉽다. 가해 학생 측은 사과와 화해보다 맞신고와 법적 대응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회복은 뒤로 밀린다. 학교에는 민원과 분쟁이 쌓이고 교사들은 갈등에 개입하는 것을 점점 더 부담스러워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학교폭력 신고 전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만큼 대응 능력의 격차도 커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사건화되기 전부터 변호사와 상담하며 대응 전략을 세운다. 증거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떤 진술을 해야 하는지 세세하게 조언을 받는다. 반면 제도에 대한 정보나 법적 지원을 충분히 얻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은 복잡한 절차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장애나 이주 배경 가정의 아이들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이런 격차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취약한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교는 법정과 달라야 한다.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때로 미성숙한 판단으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물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교육의 목적은 응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다시 공동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본래 역할이다. 지금의 제도는 그 균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학교폭력 제도를 다시 돌아볼 시점이다.

먼저, 어디까지 학폭 사건으로 다룰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사소한 갈등부터 형사사건에 가까운 폭력까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처리하는 방식은 학교를 분쟁의 공간으로 만든다. 실제 법원에서는 친구에게 ‘분신사바를 해봤더니 너 목 매달아 죽는대’라고 말한 사건이나, 문자메시지로 절교하자고 보낸 사건까지 학교폭력 여부를 두고 다투어지고 있다.

피해 학생 보호의 방식 역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가해 학생에 불이익을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피해 학생의 회복을 중심에 두고 있지는 않다. 법적 다툼이 장기화할수록 피해 학생의 학교생활은 사건에 매몰된다. 피해 학생이 원하는 것은 가해 학생의 인생을 망치는 처벌이 아니라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과 충분한 회복의 시간일 때가 많다. 피해 학생의 치료와 상담, 보호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학교가 그 회복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교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교육적 권한과 책임을 다시 가져야 한다. 학교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해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역할은 결국 학교만이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라면 그 안에는 아동과 학생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학교폭력 제도를 평가하는 기준은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취약한 아이들을 얼마나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다.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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