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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모노노케 히메"…지브리 팬들 환호할 '비밀의 이끼숲'

중앙일보

2026.03.11 13:00 2026.03.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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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석의 Wild Korea 〈34〉 제주 오름 숲길 3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한라산 동쪽의 오름 군락. 맨 아래 분화구가 보이는 곳이 붉은오름이다. 그 위에 낮고 평퍼짐한 오름이 가친오름, 그 왼쪽으로 마흐니오름이 희미하게 보인다.
제주는 봄이 완연하다. 길거리도, 공원도 매화와 동백이 한껏 치장하고 뽐내느라 바쁘다. 진정으로 제주다운 봄을 만나려면 오름과 숲길로 들어가야 한다. 복수초·노루귀·백서향이 관능적이고 원초적인 멋과 향을 내뿜는다. 야생화가 좋은 마흐니숲길과 왕이메오름, 백서향이 피는 저지곶자왈을 다녀왔다.

장대한 삼나무 숲
제주도 숲길은 신비하다. 육지와 달리 크고 작은 오름을 품고 있어서다. 서귀포 남원읍 수망리에 자리한 ‘마흐니숲길’은 한라산 중산간에 자리한 마흐니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마흐니’는 말(馬)이 ‘흔히(많이)’ 살았던 곳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큰 목장 지대였고, 지금도 목장이 있다.
마흐니숲길 입구의 안내판. 물영아리오름 주차장 맞은편에 있다.
들머리는 잘 알려진 물영아리오름 주차장이다. 물영아리오름에 100명이 간다면, 마흐니숲길은 한두 명이나 갈까. 주차장 옆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포장했다. 국물까지 살뜰히 싸 준다. 숲속에서 먹는 비빔밥이라니, 벌써 군침이 돈다.

주차장에서 길 건너편을 자세히 보면, 마흐니숲길 안내판이 서 있다. 지도가 잘 나와 있지만 혹시 몰라서 GPS 앱을 켰다. 안내판 옆으로 들어서면 작은 계곡과 거친 숲과 목장을 차례로 지난다. 공사 구간도 있어 정신이 조금 산란하다.
마흐니숲길의 자랑인 장대한 삼나무 숲. 나무에 이끼가 껴 있어 원시적인 느낌이 든다.
1시간쯤 걸으면 삼나무 숲에 들어선다. 이끼가 나무를 덮고 있어 원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삼나무 숲은 제주에 흔하지만 이런 장대한 숲은 본 적이 없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에서 원령공주가 사는 숲처럼 신비롭다.

삼나무 숲을 통과하니 지천으로 흐드러진 복수초가 반긴다. 자세히 보니 육지 것과는 좀 다르다. 꽃과 잎이 함께 나고, 이파리가 당근 잎처럼 가늘고 색이 짙은 ‘세복수초’다. 색감이 훨씬 강렬하다.
마흐니숲길과 왕이메오름에서는 흐드러진 복수초 군락을 만날 수 있다.
마흐니숲길에서 본 용암유류. 용암 흐른 자국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바위다.
마흐니숲길에서는 다양한 화산 흔적도 만난다. 마흐니궤는 용암이 만든 동굴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공간이 넓다. 지면 아래로 깊게 팬 수직 동굴의 형태다. 4·3 사건 당시 주민의 피난처였다. 용암유류(熔岩流類)는 용암이 흐른 자국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바위다. 화산 지대에서도 보기 어려운 흔적이라고 한다.

마흐니오름 정상까지는 급경사가 없는 순한 길이다. 정상 일대가 숲으로 덮여 조망이 안 나오는 게 흠이다. 하산은 왔던 길을 되짚는다. 마흐니숲길 옆에 명성 자자한 사려니숲길이 있다. 지도만 보고 대충 그곳으로 갔다가는 십중팔구 길을 잃는다. 반드시 마흐니숲길 입구로 돌아와야 한다.
차준홍 기자

야생화 군락과 깊은 분화구
분화구가 깊게 패인 왕이메오름. 오른쪽 뒤편으로 산방산이 보인다.
서귀포 안덕면 광평리에 자리한 왕이메오름은 봄 야생화가 많이 핀다. 과거 탐라국의 왕이 여기서 사흘 동안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에서 '왕이메'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덴힐CC 리조트 주차장에서 200m쯤 더 가면 오름 입구가 나온다. 오름 전체가 호명목장 땅인데, 도민과 관광객을 위해 개방했다. 사유지인 만큼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겠다.

오름에 들어서면 울창한 삼나무 숲이 반긴다. 삼나무 숲 사진이 SNS에서 유명해졌으나 야생화야말로 왕이메오름의 자랑이다. 걷다 보면 복수초·노루귀·변산바람꽃을 심심찮게 마주한다. 샛노란 복수초, 솜털이 앙증맞은 노루귀와 눈 맞춤하며 인사를 건넨다. 활엽수가 가득한 능선을 한 바퀴 돌고, 분화구로 내려가 본다. 한참 내려가야 분화구 바닥에 닿는다. 왕이메오름은 능선에서 분화구까지 깊이가 무려 101.4m다.
왕이메오름의 분화구는 깊이가 100m가 넘는다. 분화구 안에 있으면 포근한 느낌이 든다 .
야생화를 좋아한다면, 봄철 제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꽃이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곶자왈 지대에서 자라는 키 작은 나무다. 2~3월 눈부신 흰 꽃을 피운다. 송이송이 꽃이 매달린 모습이 신부의 부케 같다. 백서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저지곶자왈이다. 제주올레 14-1코스를 거꾸로 걸으면서 백서향을 찾아보길 권한다.
저지곶자왈에서 본 백서향. 숲 전체에 꽃향기가 진동한다.
백서향은 도톰한 흰 꽃이 눈부시고, 짙은 향기가 일품이다.
'오설록'의 싱그러운 녹차 밭을 지나면 14-1코스 종착점을 만난다. 여기서 30분쯤 걸으면 저지곶자왈 지대에 들어선다. 돌과 나무가 뒤엉킨 풍경이 거친 곶자왈 그대로다. 어디선가 짙은 향이 난다면 무조건 따라가시라. 코를 킁킁거리며 진하고 달콤한 향기를 쫓다 보면, 흰 꽃을 매단 백서향을 만날 수 있다. 다소 칙칙할 수 있는 곶자왈 풍경은 흰 꽃을 무더기로 피운 백서향 덕분에 환해진다. 어느 봄이 이토록 찬란할까, 그저 경이롭다.

백서향(白瑞香)의 뜻은 ‘상서로운 향기가 나는 하얀 꽃’이다. 일명 천리향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향기가 압도적이다. 백서향이 한 번 눈에 들어오면 계속 나타난다. 화산석 틈, 큰 나무 아래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배가 부를 만큼 백서향 향기를 맡으며 제주의 봄날을 만끽한다.
여행정보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야영장. 사이트가 독립적이고, 데크가 커서 좋다.
오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을 추천한다. 숙소와 야영장을 모두 갖췄다. 야영장은 사이트가 독립적이고, 데크가 커서 좋다. 휴양림 안에 붉은오름과 말찻오름 산책로가 잘 나 있다. 휴양림에서 마흐니숲길 입구까지 차로 10분 거리다. 원점 회귀 코스인 마흐니숲길은 왕복 10.6㎞,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왕이메오름 원점 회귀 코스는 약 5㎞, 2시간쯤 걸린다. 저지곶자왈은 오설록을 들머리로 백서향을 찾아 걷는다. 제주올레 14-1코스 이정표를 따른다.
진우석 여행작가 [email protected]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 학창시절 지리산 종주하고 산에 빠졌다. 등산잡지 기자를 거쳐 여행작가로 25년쯤 살며 지구 반 바퀴쯤(2만㎞)을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캠프 사이트에서 자는 게 꿈이다. 『대한민국 트레킹 가이드』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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