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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끊고 '수령님' 셀프등극…9살 주애 띄운 김정은 계산

중앙일보

2026.03.11 13:00 2026.03.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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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노 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치며 김정은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불과 6년여 뒤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올라 동등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때는 그저 농담거리로 취급받았던 동북아 최빈국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이제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도 누리지 못했던 높아진 전략적 위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성공한 흑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이 변화는 한국의 안보 환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이제 우리는 격이 달라진 김정은을 상대해야 합니다. 지금 김정은을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더중앙플러스] 김정은 연구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36
코로나19 확산기 북한식 격리는 단순명쾌했다. 증상이 있거나 해외에서 입국한 경우, 그런 이들과 접촉한 경우에는 무조건 ‘의학적 감시 대상자’로 지정했다. 그리고 집에 가뒀다.

“격리는 고상한 표현이고, 그냥 한 곳에 몰아 따로 가둬놓고 아무 지원도 없었다.”
“격리되는 건 그냥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고, 죽으면 내다 파묻고 그렇게 처리한다.”


국제앰네스티 등이 확보한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들도 오래 가둬놓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빠져나오려다 적발되면 밖에서 문에 대못을 박았다.


그런데도 김정은은 외부의 백신 지원 제안은 모두 거부했다. ‘하노이 노 딜’ 이후 그에게 급한 건 상처받은 최고존엄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치료가 아닌 완벽한 통제에 더 중점을 둔 격리가 이뤄진 이유다. 누구보다 강한 존재로 거듭나야 했던 김정은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됐다.


노동신문은 9일 ″8일 평양체육관에서 국제부녀절 기념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공연에 참석했다. 뉴스1
이런 조급함은 그의 ‘말’에 그대로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스피치로그’에 의뢰해 노동신문 10년치 보도 전량 13만7513건, 텍스트 데이터 1800만여 건(2016년 1월~2026년 1월)을 공동 분석한 결과다.

김정은의 변화는 ‘수령님’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면 뚜렷해진다. 정상회담이 돌아가던 2018~2019년 2월 수령님은 1만2601차례 쓰였다. 하지만 노 딜 이후인 2019년 2월~2022년에는 빈도가 3만4694번으로 급증한다. 리더십 위기에 따른 수령 체제 부각이다. 특히 노 딜 전 쓰인 수령님은 모두 김일성을 지칭했지만, 이후에는 김정은을 칭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2020년 처음 김정은을 수령님으로 부르기 시작해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이후부터 사용 빈도가 빠르게 증가했다.

김정일은 사후에야 얻은 수령 칭호를 김정은은 서른여섯 살에 스스로에게 부여, 선대의 반열에 ‘셀프 등극’한 것이다.

하노이 노 딜은 김정은에게 단순한 외교 실패가 아니라 ‘김일성 체제의 계승자’에서 ‘김정은 체제의 창설자’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권력 서사의 주인공 교체다. 그의 딸 주애가 대중에 공개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계산된 등판이었다.

※북한의 대내 매체인 노동신문은 주민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닌, 김정은이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이 만들려는 북한 체제의 모습이 하노이 노 딜 전과 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방대한 분량의 언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김일성을 넘어서는 ‘절대적 수령’에 오르려는 김정은, 그가 꿈꾸는 번영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아래 URL을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0303




유지혜.정영교.심석용([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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