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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사회공헌 맛집’이 어딘가요

중앙일보

2026.03.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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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김시원 더버터 편집장
지난달 영국 한 대형 재단 담당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이름이 낯익었다. 2년 전 행사장에서 발표자로 만난 인연이 있었다. 그는 ‘처칠 펠로’ 연구 기금을 지원받아 조만간 한국에 방문할 예정이라며 정중히 미팅을 요청했다.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사례를 소개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미리 찾아본 한국 CSR 사례들을 예로 들며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자신의 연구에 담아 영국 자선 분야에 널리 공유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데 해외에서 먼저 알아보고 열광하는 것들이 있다. K팝·K드라마·K화장품. 다음은 K사회공헌인가. 해외 재단이나 소셜섹터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 사회공헌 사례를 대충 몇 개 쓱 흘려주면 대단하다, 멋지다는 ‘찐 반응’이 터져 나온다. 한국의 사회공헌과 임팩트 생태계는 속도·실행력·혁신성·파트너십 등 모든 측면에서 이미 선진국을 앞서가고 있는데 왜 우리는 그 좋은 성과들을 자랑하지 않는 걸까.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던 하버드 강의실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인 학생이 본인의 사소한 성취조차 엄청난 성과로 포장해 소개하는 반면, 한국인 여학생은 뛰어난 성적과 실력을 갖췄음에도 머뭇거리면서 자신의 성취를 축소해서 설명했다. 겸손을 미덕이라고 배웠기 때문일까. 한국의 기업들도 비슷하다. 사회공헌 성과를 드러내는데 조심스럽다. 놀라운 성과로 현장을 바꾸고 있지만, 자신이 한 일을 알리는 데 눈치를 본다.

한 전문가는 이를 ‘진정성의 굴레’라고 표현했다.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정작 중요한 성과와 임팩트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확산되지 않는 사회공헌 사업은 사회문제를 영영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버터는 한국의 우수한 사회공헌 케이스를 소개하기 위해 가칭 ‘사회공헌 스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사회공헌 가이드북’ 제작이 그 첫 번째 스텝이다. 미슐랭 가이드처럼 사회공헌 맛집을 찾아내 소개하려고 한다. 기업과 재단이 어떤 사회문제에 돈을 쓰고 있는지,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리기 위해 서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강의실 뒷줄에서 쭈뼛거리던 한국 기업들이 무대 중앙으로 나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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