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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버터] 사회공헌에는 저울이 아니라 나침반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26.03.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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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룡 한국사회가치평가 대표

20년간 사회공헌 생태계의 조력자로 활동해온 김기룡 한국사회가치평가 대표. 이경호 기자
20년 전만 해도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할 때 대놓고 ‘불우이웃 돕기’라는 표현을 썼다. 단순 기부나 자선 활동에 머물렀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의 사회공헌은 환골탈태 수준이다. 이제 기업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직접 설계하고, 비즈니스와 연계된 전략적 사회공헌 활동을 운영하며, 성과와 임팩트를 측정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런 변화가 기업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김기룡(48) 한국사회가치평가 대표는 무대 뒤에서 사회공헌의 판을 설계해 온 사람이다. 2006년 ‘사회공헌 컨설팅’ 일을 시작해 올해로 20년이 됐다. 우리나라 사회공헌의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목격자이자 조력자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사회공헌 둘러싼 질문이 세 번 정도 바뀐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잘하고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효과가 있는가’를 묻습니다. 사회공헌도 투입 대비 효용을 입증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지난 6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국사회가치평가 사무실에서 김기룡 대표를 만났다.



사회공헌 ‘리트릿’ 철학·방향 재정비하라


Q : ‘사회공헌 컨설턴트’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궁금해요.
A : “연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4년 정도 사회복지 기관에서 근무했어요. 삼성이나 CJ 등 대기업 지원을 받아 복지사업을 진행했는데, 좀 의외였어요. 기업이 돈 버는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일도 하는구나. 신기했죠. 사회공헌 사업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기획하는 컨설팅 회사가 생긴다고 해서 호기심 반, 입사하게 됐어요.”


Q : 일해 보니 잘 맞았나 봐요.
A : “사회공헌 컨설팅이라는 게 한국에 없던 비즈니스였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로웠죠. 도대체 뭐 하는 회사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고요. 신문에도 소개됐어요. ‘불우이웃 돕기를 컨설팅하는 회사’로요. 그때는 사회공헌에 대한 인식이 그 정도였어요. 컨설팅하는 저희조차도 이 영역이 이렇게 커질지 몰랐어요.”


Q : 많이 바뀌긴 했죠.
A : “제가 사회공헌 컨설팅을 시작했을 때는 ‘도입기’였어요. 기업들이 ‘이제 우리도 좋은 일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한 시기죠. 기업들의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2010년대에는 사회공헌 사업이 고도화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임팩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사회공헌 파트너들도 다양해지죠. 사회복지단체나 NGO와 함께 일하던 기업들이 사회적기업, 소셜벤처들과 협력하기 시작합니다. 코로나 시기와 ESG 열풍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또 바뀌었어요. 최근 국내 기업과 재단들 사이에서는 ‘사회공헌 리트릿(Retreat)’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공헌의 재구조화 단계, 혹은 재정비, 재도약 단계라고 볼 수 있어요.”


Q :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A : “그동안 해오던 사업에서 한 발 떨어져 방향과 철학을 다시 점검하고 앞으로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할지, 어떤 전략을 가져가야 할지 성찰하는 과정에 돌입하는 것을 뜻합니다. 2020년 전후로 대기업 총수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것도 영향이 있습니다.”


Q : 젊은 리더들의 등장이 사회공헌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A :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젊은 리더들은 대개 효율성을 강조합니다. 사회공헌도 효율적으로 하길 바라죠. 투입되는 자원 대비 그만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사회공헌이 기업의 브랜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런 걸 묻죠.”



측정이 지속가능한 사회공헌 사업 만든다

김기룡 대표는 2010년 ‘플랜엠’을 설립한 이후 SK그룹·두산·CJ·현대차·삼성생명 등 주요 기업들의 사회공헌 컨설팅을 진행하고 포스코와 BMW 등 대기업 공익재단 설립을 도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사회공헌 프로그램 평가지표’를 만들고 SK그룹의 ‘사회성과 인센티브’ 개발에도 참여하며 국내 사회적가치 측정의 기반을 닦았다. 2019년에는 사회성과 측정 전문 기관인 ‘한국사회가치평가’를 설립했다.


Q : ‘컨설팅’에서 ‘측정’으로 자연스럽게 영역을 확장하게 됐네요.
A : “점점 더 많은 고객이 사회공헌의 효과를 묻기 시작했으니까요. 심지어 플랜엠보다 한국사회가치평가가 더 잘됐어요. 사회공헌 시장은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고 늘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는 반면 ‘측정’이라는 영역은 임팩트투자·소셜벤처·사회적기업·비영리 등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시장이 훨씬 넓죠.”


Q : 측정을 잘해서 사업이 더 커진 사례들도 있나요.
A : “‘세움’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세움이 주로 하는 사업은 수용자들의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에요. 교도소에 ‘아동친화접견실’을 조성해 감옥에 있는 부모와 자녀를 만나게 해주는데, 아이가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지 않도록 밝고 환한 장소에서 음식도 같이 먹을 수 있게 합니다. 아동 인권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범죄피해자 자녀가 아닌 가해자 자녀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어요. 아동친화접견실 설치가 수용자들의 생활 태도와 교정 효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즉 재범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측정해 입증했고, 그 효과를 인정받아 법무부 예산으로 전국 교도소에 아동친화접견실이 설치됐습니다.”


Q : 측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네요.
A : “물건의 가치를 정할 때 눈대중으로 대략 이만큼이니까 얼마다, 이렇게 값을 매기면 안 되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성과라는 것도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저울’이 되자,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는 생각을 바꿨어요. 사회공헌 영역에는 저울보다는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측정하는 이유는 점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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