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권력』을 쓴 미국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Sidney Mintz)는 동아시아의 음식이 세계에 이바지한 대표적인 식품으로 두부를 꼽았다. 또 다른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아시아 콩(Asian soybean, 대두(大豆))의 단백질이 동물성 식품에 들어 있는 단백질만큼이나 질이 좋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콩은 K-Food의 뿌리다. 한식을 상징하는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 두부나 콩나물 등이 모두 콩으로 만들어진다. 한식의 뿌리인 ‘콩’을 주제로 K-미식 콩 벨트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콩 벨트 구축을 통해 세계인과 함께 콩 음식을 즐기는 계기와 시공간을 확대할 수 있다.
콩 음식의 역사적 서사
콩 미식벨트 조성으로 세계 푸디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즐거움의 핵심은 우선 ‘이야기가 있는 식사(storytelling in food)’이다. 늘 그렇듯 역사적 서사는 즐거움의 출발점이 된다. 콩(대두)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라는 게 정설이지만, 두부의 제조 기원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식 문화사를 개척한 고(故) 이성우 한양대 교수나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동이권에서 살던 한국인의 조상들이 남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유(乳)식품을 먹던 식습관을 적용하여 콩으로 두유(豆乳)를 만들고 이를 두부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우리 선조가 두부를 발명했다고 믿는 유력한 근거는 맷돌의 원시형인 연석(碾石)이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중기 및 후기 유적에서부터 발견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 서울 암사동 유적, 함북 경흥 서포항 유적, 부산 암남동 유적, 강원 춘천 중도 유적 등에서 연석이 잇따라 발굴되었는데, 이는 중국 한나라 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두부가 널리 제조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또 콩나물도 ‘식탁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콩나물을 일 년 내내 즐겨 먹는다. 콩나물은 비타민을 섭취하기 어려운 겨울에 채소를 대체하는 역할을 해왔다. 고려 고종(高宗)때 저술된 『향약구급방』에 콩나물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등장한다. 하지만 곡물의 싹을 틔우는 방법은 원시시대에 이미 알려진 기술이어서 실제 콩나물의 제조와 식용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기원한 두부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조차 거의 먹지 않는 독특한 식재료인 콩나물의 서사가 K-미식 콩 벨트와 결합하게 되면, 한식만의 고유하고 차별화된 브랜드를 세계에 새로운 서사로 각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복원되어야 할 콩 음식의 다양성 콩 벨트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의 두 번째는 잊혀진 맛을 ‘찾아내고’ ‘맛보는’ 것이다. 이는 선조의 지혜에서 빌려올 수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두부는 두부(豆腐), 두포(豆泡), 숙유(菽乳)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최초의 두부 제조법은 16세기 초 김유의 『수운잡방』을 비롯해 현재 10여 건의 고문헌에 남아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조선시대 두부 음식이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다는 점이다.
압착한 두부 외에도 연두부와 두부피가 만들어졌으며, 녹두나 계란을 넣은 두부, 다양한 색을 낸 두부가 만들어졌다. 두부장(豆腐醬), 소맥부장(小麥腐醬), 장아찌류, 어육장(魚肉醬), 밀초장(蜜椒醬) 등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춘 두부 발효식품도 상당히 발달하였다.
두부 제조에 필수적인 응고제로는 간수 외에도 산성이 강한 김칫국물, 발효음식의 물, 산장초 등 특수한 식초, 칡, 산반잎, 석고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 문종 1년(1451)의 기사에 두부를 만들 때 깨끗하지 못한 소금의 용액인 간수(艮水)보다 산수(酸水)를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두부 산업화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응고제와 색을 내기 위한 방법, 그리고 여러 가지 두부 발효식품은 전통음식의 다양성 확대와 가치 제고라는 측면에서 다시 복원하여 선보일 필요가 있다.
콩 음식으로 즐기는 풍류 세 번째 즐거움은 식탁 위의 퍼포먼스다. 몸에 좋은 두부 음식을 밥상에서 직접 만들어 먹으며 모임을 함께하는 ‘연포회(軟泡會)’의 전통을 재현하면 음식의 맛을 더욱 정겹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증보산림경제』에서 연포(軟泡)는 추운 계절에 먹기 좋은 음식이라고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연포를 함께 먹고 즐기는 ‘연포회’가 발달했다.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에서 ‘연포회는 친구들과 모여 두부꼬치를 닭 국물에 적셔 먹는 모임’이라고 했다. 『동국세시기』에서도 시월 풍속으로 서울의 난로회와 함께 연포회가 나온다. “두부를 얇게 썰어 꼬챙이에 꿰어 꼬치를 만들어서 기름에 부친 다음 닭고기를 넣어 끓인 국을 연포라고 한다. 여기서‘포’란 두부를 말한다”는 대목이 있다.
식탁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는 K-BBQ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옛 풍류 문화인 ‘연포회’를 접목하면 K-미식 콩 벨트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콩과 지역관광 현재 콩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미식관광은 지역의 특산품과 연계된 축제나 체험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콩 요리를 단순하게 맛보는 것을 넘어, 콩이 재배되고 가공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며 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경기도 파주시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를 만큼 품질이 우수한 ‘장단콩’의 주산지다. 매년 11월에 파주 장단콩 축제가 열리는데, 콩 판매를 비롯해 콩 타작, 꼬마 메주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파주 ‘웰빙마루’는 2천여 개의 항아리가 있는 복합 체험공간으로 장단콩을 활용한 장담그기와 쿠킹클래스를 운영한다.
경북 영주시는 국내 토종 콩인 ‘부석태’의 명맥을 잇는 곳으로, ‘콩세계과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2015년 개관하여 두부, 메주 등 전통 콩 요리를 직접 만들고 맛보는 체험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콩의 역사와 생태에 대한 교육적 내용도 함께 제공하여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유익한 장소이다.
이러한 콩 주제 관광 프로그램에 새로운 콩 음식과 숨겨진 역사 이야기, 풍류 문화까지 더해지면 K-미식 콩 벨트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지역마다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콩 전통이 현대적 감각과 조화를 이루어 미식의 즐거움과 문화적 깊이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을 완성할 것이다.
과거의 축복에서 미래의 축복으로 현재 세계 미식의 흐름은 지속가능성과 건강에 모아져 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대응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10월 말에 개최된 2025 한식 컨퍼런스의 주제는 ‘식물성 발효음식’이었고, 올해 처음 개최된 남도국제미식산업박람회의 주제도 ‘지속가능한 음식’이었다. 2년 전 도쿄에서 개최된 ‘23 도쿄 음식포럼의 주제도 ‘음식과 지속가능성’이었다. 이렇듯 세계 미식계는 지속가능성에 부합하는 미래 음식에 주목하고 있고, K-Food의 뿌리 콩은 ‘지속가능한 미래 음식’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콩은 더 이상 과거의 축복이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미래의 축복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콩 벨트에 이어 장(醬), 사찰음식으로 이어지는 보다 풍성한 K-Food 벨트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식의 정체성에 다가서려는 세계 미식가의 발길이 한층 더 바빠지지 않을까 기대된다.